오늘의 문장

야스쿠니신사(2014년 11월 5일)

divicom 2014. 11. 5. 10:38

오늘 아침 자유칼럼에서 보내준 황경춘 선생님의 칼럼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저의 무식을 절감했습니다. 일본의 각료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때마다 욕하면서도 정작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일본에 충성한 '전범'들이 묻힌 곳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아흔의 연세에도 저와 같은 후학들의 무식과 무지를 깨뜨리려 애쓰고 계신 황 선생님... 선생님,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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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하는가

2014.11.05


한국과 일본의 대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알다시피 전시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역사인식 차이입니다.  일본 총리와 고위 관리의 야스쿠니신사(靖神社) 참배도 그 하나입니다. 이번 가을 예대제(例大祭)에 국제 여론을 의식한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는 헌금(獻金)만 보냈지만, 그의 각료 여러 명과 160명이 넘는 여야 국회의원이 참배했습니다. 

우리가 단순한 전몰자에 대한 예의까지 무시하는 비정한 민족은 아닙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몰자를 모시는 곳을 가지고 있고, 국가 원수를 비롯한 국민들이 참배를 하고, 외국인도 적절한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야스쿠니는 상식적으로 아는 전몰자 위령소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태평양 전쟁의 원흉인 소위 A급 전범자를 합사(合祀)하여, 일본의 정신적 지주인 천황까지도 참배를 기피하는 곳입니다. 1869년에 초혼사(招魂社)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시설은 1978년에 A급 전범자의 합사 전까지, 일본국민의 진정한 위령소 역할을 했습니다.

약 246만의 군인 및 군무원 등의 ‘영령(英靈)’이 함께 있는 야스쿠니에는 ‘애국자’만 있고, 천황이나 국가에 반기(反旗)를 든 자는 합사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야스쿠니 대제에는 천황이나 그의 대리인이 조화를 보내고 존경을 표시했던 곳입니다. 정한론(征韓論)을 편 명치유신(明治維新)의 국민적 영웅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도 야스쿠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일본 궁성(宮城) 부근에 그의 동상은 세워졌지만, 1877년(명치 10년)에 반란을 일으킨 서남전쟁(西南戰爭)의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야스쿠니에는 명치유신의 ‘애국’ 전몰자를 비롯해, 청일, 노일의 명치시대 두 전쟁과 그 뒤의 제국주의 전쟁 및 사변 등의 전사자나 나중에 죽은 ‘애국자’를 자동 합사하였습니다. 그들의 위패가 개별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후생성의 전사자 통보로 ‘영령(英靈)’으로 위령부(慰靈簿)에 이름을 올려 자동으로 합사되었습니다. 많은 조선과 대만의 군인이나 군무원이 합사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시의 맹목적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군부가 이 야스쿠니를 이용한 것은 당연합니다. 많은 군가나 애국가요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신사에/신으로 모셔지는 기쁨으로/이 엄마는 눈물을 흘립니다, 즐거운 마음으로’라고 된 일제 시대의 유명한 노래 가사의 일부가 기억납니다. 이런 노래로 신토(神道)에 심취한 국민을 현혹한 것입니다.

전후 야스쿠니가 정부 관할을 벗어나 ‘단위 종교법인(單位 宗敎法人)’으로 독립한 뒤, 민간인 관리자인 ‘구지(宮司)’가 합사를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니 1978년에 A급 전범 14명의 합사를 결정한 것은 천황이나 정부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전시 마지막 외무대신 히로타 코키(廣田弘毅)는 14명 중 유일한 민간인 전범이었습니다. ‘쇼와(昭和)천황’은 그가 싫어한 군부 지도자가 주(主)인 전범자의 합사를 이유로, 그 후 참배를 중단하고 그의 아들인 지금의 천황도 그 선례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 말썽 많은 전범의 합사 후 총리의 참배도 한때 중단되었다가, 2006년 8월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21년 만에 야스쿠니를 참배하여, 국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12월에 공식 참배하여,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1945년 패전 후 야스쿠니를 폐기하려는 웅직임도 있었으나, 일본 가톨릭 지도자 등 각계 탄원으로 정부가 간여하지 않는 전몰자를 위한 종교법인으로 존속이 허가되었습니다. 현재 ‘일본유족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나, 일부 유족은 종교 등 이유로 ‘평화유족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양 회는 회원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야스쿠니에 합사된 ‘영령’ 중, 만주사변 이후 대동아전쟁까지 합사된 전몰자 수는 약 235만입니다.

이 유족회 간부나 회원 중에도 A급 전범의 합사로 천황의 참배가 중지된 이후 전몰자 시설을 따로 설립하자는 움직임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지방 유족회 최초로 공식으로 이를 제안한 후쿠오카(福岡)현 연합회 회장 고가 마코토(古賀誠) 씨는 자민당 원로로, 전국 회장으로 있을 때부터 국립 전몰자 시설을 주창하였습니다.

이 야스쿠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일분의 국립 치도리가후치(千鳥ヶ淵) 묘지가 있습니다. 영어로 ‘national cemetery'라 번역되는 이 1만6천 평방미터(4,800여 평)의 공원묘지에는 36만의 무연고 전몰자를 모신 구조물이 서 있습니다. 2013년 10월에는 미 국무장관 존 케리가 미 국방장관과 함께  참배했습니다. 케리 일행은 이곳이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와 가장 비슷한 곳이기에 이 묘지에 경의를 표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베 정부는 이 시설을 어디까지나 무연고 묘원이라 부르고, 야스쿠니를 공식 위령소로 인정합니다. 

이 시설을 확대하여 진정한 의미의 국립묘지를 건설하자는 의견이 있으나, 아베 정부는 아직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립묘원을 건설하여 야스쿠니 참배의 시비를 없애자는 여론이 차츰 커지고 있습니다. 자민당 총무회장에 국립묘지 찬성자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씨가 새로이 임명된 것도 분위기를 크게 호전시켰습니다.

언론계에서는 여당을 지지하는 산케이(産經)만을 제외한 모든 주요 전국지가 이 분리 시설에 찬성하고, 민주당을 뺀 거의 모든 야당과 연립 여당인 고메이(公明)당도 찬성하고 있습니다. 아베 정부가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국제 비난에서 면할 수 있는 길은 A급 전범을 뺀 새로운 전몰자 위령소의 설립이라 생각됩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