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프란치스코 교황(2013년 12월 25일)

divicom 2013. 12. 25. 12:02

똑 같은 바티칸이 교황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지난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후 바티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선 사랑이 느껴집니다. 현지 시간 어젯밤 열린 성탄 전야 미사에서 교황은 아기 예수상을 두 손에 안고 성베드로 성당으로 들어선 후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어둠 속에 빛이 되게 하셨다"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듯 나 또한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 말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계사에 피신한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과 조합원 등 철도노조 관계자 4명에게도, 경찰의 불법 침입으로 아수라장이 된 민주노총, 민노총과 뜻을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교황의 목소리가 들렸기를 바랍니다. 조계사 부근의 경찰관들도 그 목소리를 들었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조계사 경내로 진입하라는 명령이 내릴 경우 그 목소리에서 힘을 얻어 '신성한 명령 불복종'이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걸까요?

 
교황은 "어둠의 정신이 세상을 감싸고 있다"며 "우리 마음이 닫히고 자만심과 기만, 이기주의에 사로잡히면 어둠에 떨어지게 되고, 반대로 하느님과 형제·자매를 사랑하면 빛 속을 걷게 된다"고 말하고 "주님은 거대하지만 스스로 작아졌고 부유하지만 스스로 가난해졌으며 전능하지만 스스로 취약해졌다"고도 했습니다.

교황은 또 트위터에 "크리스마스 행사는 온갖 소리로 가득하지만 사랑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침묵의 공간을 갖는 것이 좋다"는 글을 올렸고, 교황청 라디오를 통해서는 "주님을 통해 마련된 곳이 있는가, 아니면 단지 파티와 쇼핑을 위한 곳만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오늘 정오 성 베드로 광장이 보이는 발코니에서 성탄 강복 메시지를 발표할 교황, 진정 약한 사람의들 편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해에도 부디 안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분이 우리의 동행이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래는 지난 달 교황이 처음으롤 발표한 권고문에 대한 정인환 한겨레신문 기자의 기사입니다.


첫번째 ‘교황 권고’ 공개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 비판
“노숙인 숨지면 뉴스 안되지만
주가 2p만 떨어져도…말이 되나”

교황 프란치스코가 장문의 권고문을 발표해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새로운 형태의 독재’로 통렬히 비판했다. 또 “교회가 손에 흙을 묻히는 것을 주저해선 안 된다”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현실 참여를 강조했다.


교황청은 26일(현지시각) 누리집(vatican.va)을 통해, ‘복음의 기쁨’이란 제목으로 교황 프란치스코가 직접 작성한 첫번째 ‘교황 권고’ 원문을 공개했다. 전문과 5개 장에 걸쳐 모두 288개 조문, 244쪽으로 구성된 ‘복음의 기쁨’의 핵심은 제2장 1항 ‘현대 사회가 직면한 몇가지 도전 과제’로 보인다. 예수회 사제로 오랜 기간 빈민사목에 열정을 바쳤던 교황의 사회 인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배제의 경제 △돈의 맹목성 △금융체제의 지배 △폭력을 부르는 불평등 등을 오늘날 세계가 맞닥뜨린 ‘도전 과제’로 꼽았다. 그는 “(구약 시대의) 10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제는 ‘배제와 불평의 경제체제를 유지하지 말라’고 말해야 할 때다. 이런 경제체제야말로 사람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극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면서, 절대다수와의 (소득)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며 “시장과 금융투기에 완벽한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이러한 불균형이 결국 자기만의 법과 규칙을 강제하는 독재체제를 만들어냈다”고 통박했다. 교황은 “우상으로 숭배했던 고대의 ‘황금 송아지’가 오늘의 돈”이라며 “전세계적으로 냉혹한 경제체제의 독재가 횡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파 경제학의 핵심 주장인 ‘낙수효과’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교황은 “자유시장을 통한 경제성장이 결국 좀더 정의롭고 포용적인 세상을 만들 것이란 ‘낙수효과’ 이론은 단 한번도 현실에서 증명된 바 없다. 현 체제를 신성화하고, 그 안에서 경제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선의를 맹목적으로 믿겠다는 조잡하고 순진한 발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세태에 대한 통박도 이어졌다. 교황은 “늙은 노숙인이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건 뉴스가 안 되지만, 주식시장이 단 2포인트라도 떨어지면 뉴스가 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어 “모든 게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굴러가면서, 강한 자가 약한 이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이들이 배제된 채 일자리도, 미래에 대한 가능성도, 절망에서 탈출할 수단도 없이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간마저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소비재’ 취급을 받는 세상에 대한 비판도 담겼다. 교황은 “배제된 이들은 우리 사회의 밑바닥도 변방도 소외된 것도 아니다. 더이상 우리 사회의 일부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착취를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쫓겼다. 버려져야 할 찌꺼기 취급을 받고 있다”고 탄식했다.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와 관련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지금, 교황이 제시한 ‘교회의 사명’은 눈길을 끈다. 교황은 “문 밖에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예수께선 끊임없이 ‘어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라’고 가르치셨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안온한 성전 안에만 머물며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며 “잘못될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거짓된 안정감을 심어주는 구조 안에서 침묵을 지켜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을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