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단풍놀이와 배낭(2013년 10월 20일)

divicom 2013. 10. 22. 11:25

시월도 어느새 하순입니다. 시월이 아주 가기 전에 시 한 편씩 읽어 보시지요. 오늘 아침 tbs '즐거운 산책' 시간에는 정지용 선생의 시에 김희갑 선생이 곡을 붙인 노래 '향수'를 들었습니다. 가수 이동원 씨와 테너 박인수씨가 함께 부른 이 노래, 꼭 한 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 칼럼 '들여다보기'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메고 다니는 배낭, 단풍놀이 가는 분들에게 더욱 인기있는 배낭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와 '향수'의 노랫말인 시 '향수'를 옮겨둡니다.


들여다보기’ -- 배낭

 

요즘 아침, 저녁 지하철에서 만나는 얼굴은 두 부류입니다.

출근 중이거나 퇴근 중인 지친 얼굴들과

커다란 배낭을 지고도 여유로워 보이는 얼굴들...

가을이 깊어가며 단풍놀이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 전 사냥감을 운반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을 거라는 배낭,

요즘은 남녀노소 누구나 지고 다닙니다.

손으로 들기엔 무거운 짐도 배낭에 넣어 어깨에 메면

훨씬 쉽게 옮길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세상에 좋기만 한 것은 없습니다.

지고 다니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배낭도

다른 사람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 많습니다.

등에 눈이 달려 있지 않으니

내 등의 배낭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괴롭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단풍 구경을 가면 남들도 다 가는 것 같지만

누구나 단풍 구경을 갈 수는 없습니다.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어 놀러가는 사람은

가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배낭 메고 놀러 가는 분들이 출퇴근 시간을 피해 지하철을 타면

비난의 눈총을 받는 대신 즐거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요.

 

가을 산에 가시는 분들

잎 떨구는 나무들에게서 가벼워지는 법을 배우고 오시면 어떨까요?

다음번엔 좀 더 작은 배낭을 메고 그만큼 자유롭게 떠나 보시지요.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