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김용정 선배님 (2013년 4월 30일)

divicom 2013. 4. 30. 23:59

오늘 오후 동네 카페에 앉아 글을 쓰다가 김용정 선배님이 별세하셨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선배는 많아도 존경할 만한 분은 몇 분 되지 않는데 그 중 한 분이 너무 일찍 떠나신 겁니다. 신문기자 시절엔 '기자다운 기자'인 김 선배님의 함자만 듣다가 언론계를 떠난 후 대학생들과 공부하는 '아름다운서당'의 동료 교수로서 직접 만나뵈니 얼마나 기쁘던지요. 그간 들었던 명성이 허명이 아님을 느끼며 존경의 마음이 더욱 커짐을 느꼈습니다. 


지난 겨울 교수세미나에서 같은 조에 앉아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더 유익한 교육을 펼 수 있을까 고민하시던 열정적인 모습이 어제 뵌 것처럼 선합니다. 별세 소식을 접하고는 한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눈물이 나서 글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는 대로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배님은 참으로 바르게 최선을 다해 사셨고 또 그렇게 서둘러 떠나셨습니다. 선배님은 당신의 별세가 당신의 삶에 부합한다며 웃어넘기실지 모르나 남은 저희들은 참으로 황망하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선배님의 별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삶이라는 무대에 함께 섰던 분들이 떠나실 때마다 저라는 사람을 이루는 부분들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감을 느낍니다. 제 조각들도 그분들을 따라 저보다 먼저 그곳에 가서 제가 당도하길 기다리겠지요. 

김 선배님, 선배님의 호탕한 웃음, 정 담뿍 담긴 눈길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선배님, 다시 뵈올 때까지 부디 편히 쉬소서!


* 아래는 '아름다운서당'을 만들어 이끌어오신 서재경 이사장님이 아름다운서당 제자들에게 오늘 저녁에 보내신 이메일입니다. 김 선배님을 아시는 분이면 누구나 그 분의 때이른 별세를 안타까워하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도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아시면 함께 슬퍼해주시고 영면을 빌어 주실 것 같아 서재경 선배의 이메일을 조금 줄여 옮겨둡니다. 



아름다운서당 제자 여러분,

 

존경하는 김용정 교수님이 오늘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폐암과 투병해 오시다가 70세를 일기로 타계하셨습니다.

발병한 지 불과 6개월여 만에 홀연히 떠나시다니, 암은 참 나쁜 놈인가 봅니다.

 

김용정 선생님은 YLA5기부터 아름다운서당 교수진으로 합류하시어 YLA6기와 수원1기 등 3개 클래스에서 인문학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수학한 제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듯이 김선생님은 열정의 화신이셨고 정의의 사도였습니다. 선생님은 젊은 제자들이 항상 깨어서, 바르고 의롭게 살아가기를 염원하셨습니다. 학생들과 김선생님과의 일화를 엮으면 방바닥에서 천장에 닿을 것입니다.

 

젊어서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하여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오르기까지 시종 대쪽 같은 기자로 일관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회활동을 하시고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김선생님은 자신이 일생동안 해본 일 중에서 아름다운서당 교수만큼 뜻 깊고 보람된 일은 없다고 고백하시곤 했습니다. 그만큼 아름다운서당을 사랑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아름다운서당에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서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찾아왔습니다. 그때마다 의논의 상대가 되어 주시고 용기의 원천이 되어 주셨습니다. 특히 무엇이 옳은 것인지 판단이 흐려질 때 김선생님은 항상 바른 길을 제시해주시어 나에게는 나침반과도 같은 분이셨습니다... 홀연히 떠나셨으니 앞으로 어려운 일을 당하면 누구와 의논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암 진단을 받고 내게 연락하시어 수원1기의 인문학 마지막 수업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하실 때만 해도 새봄부터는 다시 수업을 하실 수 있으리라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김선생님도 나도. 그래서 학생들에게는 투병 중이라는 소식도 일부러 전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치유법을 고집하시기에 참고가 될 책 몇 권을 구해 보내드렸고 체력을 돋우는데 도움이 되라고 쇠고기 몇 근 보내드리면서 빨리 털고 나오시라고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그것도 불찰이었나 봅니다.

 

김선생님의 지도를 직접 받은 학생들은 어쩌면 나와 같은 놀라움과 나와 비슷한 슬픔을 맛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졸업생들은 동기생들과 의논하여 여러분 수준에 맞는 조의를 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발인은 오는 5월2일 새벽6시에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립니다. 장지가 광주 선영이라서 새벽 일찍 서울을 떠나시는 것입니다.

 

직접 지도를 받지 않은 졸업생은 김선생님의 유해가 안장되는 5월2일 정오 1분간의 묵념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이 시각에 맞춰 경건한 마음으로 김선생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70이면 많이 살았다고 한사코 허허 웃으시던 목소리가 귀에 생생합니다.

아 정말 가슴이 미어지네요.

 

더 좋은 곳에 가셨을 것이라는 사실로 이 아픔을 달래봅니다.

 

2013년 4월 마지막 밤

서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