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6

00을 선택할 권리, 그리고 '청원' (2022년 6월 20일)

왜 제목에 '00'을 넣었냐고요? 그건 제목 때문에 이 글을 피하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제목에 '죽음'이 들어간 글은 그렇지 않은 글보다 읽는 사람이 적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조차 싫어하나 보다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삶을 깊이 사랑하고 삶에 열중하다 보면 그렇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살래야 살 수 없고, 죽음을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고 싶은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법률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은 죽고 싶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죽음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의 선택권은 허용되기 어렵습니다. 삶은 아이러니의 연속이지만 그 아이러니는 때로 너무나 잔인합니다. 아래 칼럼을..

동행 2022.06.20

안락사, 존엄사, 종활(2017년 2월 27일)

아버지는 2015년 음력 8월 4일 아침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흔까지 사셨으니 호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호상'은 '순산'처럼 무정하거나 무심한 말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 떠나시는 건 그 이별이 언제든 '호상'일 수 없고, 아기를 낳는 과정은 어떤 경우에도 '순(順)'하지 않습니다. 물론 '순산'의 사전적 정의는 '산모가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아이를 낳음.'이긴 합니다만. 아버지가 떠나시기 일년 여 전에는 시어머님이 떠나셨습니다. 백 번째 생신을 넘기고 가셨으니 그 또한 호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남은 자녀들에겐 여전히 슬픈 기억입니다. 세상의 속도는 빨라도 두 분과의 사별은 어제 일처럼 아픕니다. 어디서든 두 분 연배 어른들을 뵈면 눈이 젖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때 이렇게 ..

오늘의 문장 2017.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