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존엄사'와 '죽을 권리'(2016년 2월 3일)

divicom 2016. 2. 3. 06:55

저는 오래 전부터 '존엄사'와 '죽을 권리'를 지지해왔습니다. 이 블로그에는 그런 생각을 나타낸 글이 몇 편 

있습니다.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이 쓴 <조화로운 삶>과 <아름다운 삶, 그리고 마무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는 지난 가을 아흔한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저희 아버지보다 한 살 위이신 자유칼럼의 

황경춘 선생님은 곧 아흔두 번째 생신을 맞으신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때맞춰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해 

칼럼을 쓰셨기에 옮겨둡니다. 쉰 살만 되어도 늙은 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선생님처럼 '깨어' 계신

선배님을 알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요. 부디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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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게 죽을 권리

2016.02.02


해가 바뀌고 또 한 달이 지나, 이달 하순에는 아흔두 번째 생일이 돌아옵니다. 일반적으로 ‘인생 50’이라던 젊은 시절, 앞뒤 가리지 않고 일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00세 인생’이라는 노래가 유행하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인구 구성이 고령자(高齡者) 사회로 바뀌는 속도가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빠른 축에 속한다는 우리나라입니다.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08년의 10.3%에서 작년에는 13.1%로 껑충 뛰고 이 추세로는 2020년에 이 비율이 20.8%에 도달할 것이라고, 정부 통계청에서 예측하였습니다.

학교 동창이나, 같은 연배 친구들이 하나둘씩 먼저 세상을 떠날 때, 충격은 받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없었습니다. 노랫말에도 있듯이 ‘알아서 갈 테니’하고 평소의 낙천적인 생활태도로 곧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고령자들의 화제에 자주 등장하는 ‘웰 다잉(well dying)에는 관심이 있습니다. 저세상에 가는 것에 공포는 느끼지 않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건강을 유지하다가, 많은 고통 없이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치매같이 정상적인 의식을 잃은 채 생리적으로 만 생명을 유지하여 가족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비극은 꼭 피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달에 국회를 통과하여 2018년부터 시행된다는 우리나라의 존엄사(尊嚴死)법을 크게 반기고 있습니다.

수년 전 어느 일본 잡지가 40여 명의 사회명사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어떠한 죽음을 택하겠는가라는 물음에, 응답자 중 두 사람이 암으로 생을 마치는 것을 원한다는 색다른 의견을 보내왔는데, 그 이유가 암 환자는 죽을 때까지 의식을 잃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 중 하나는 이름 있는 의사로, 그분 소견으로는 현대의학으로 암에서 오는 고통을 견뎌낼 정도의 기술은 충분히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치매나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는 것보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기의식을 유지하는 암으로 인한 사망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두 사람에 하나 꼴로 암 환자가 많다고는 하는데, 선택한다고 전염병도 아닌 암에 걸린다는 이야기는 다만 헛된 꿈에 지나지 많겠지만요.

우리나라 존엄사법은 의사와 환자 합의로 무의미한 연명 수단을 중지하는 비교적 온건한 내용이지만, 환자 측의 정신적, 물리적 부담을 가볍게 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법이라 생각합니다.
이 법의 입법 동기도 1997년 환자 가족의 요청으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의사가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재판을 받은 사건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건으로 의사가 재판을 받은 예가 있습니다만, 존엄사를 합법화하는 법은 여러 단체의 반대로 아직 제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죽음이 불가피한 경우, 의사의 판단과 처방으로 환자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편안하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법을 가진 나라는 세계에서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네 곳입니다. 미국은 1994년에 찬·반 양 진영의 뜨거운 논쟁 끝에 채택한 오리건(Oregon)주를 비롯한 4개 주뿐으로 전국적으로는 반대하는 곳이 더 많습니다.

미시건주의 ‘죽음의 의사’라는 별명을 가진 잭 케보키언(Jack Kevorkian) 박사처럼 자살방조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도, 존엄사 운동을 계속하는 의사도 있지만,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미국 의사회와 가톨릭교회는 환자의 ‘죽을 권리’ 운동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존엄사 운동이 다시 미국의 뜨거운 논쟁거리로 등장한 것이 2014년에 캘리포니아 주민이 존엄사를 위해 오리건주로 이사하여 죽음을 택한 뒤부터였습니다.

말기 뇌암 진단을 받은 브리트니 메이너드(29) 여사는 오리건주로 주소를 옮긴 그해 11월에 의사가 처방한 약을 먹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사건 뒤, 그녀가 거주하던 캘리포니아주를 포함한 4 개 주의회에 존엄사 법안이 제출되어 심의 중입니다.

이러한 세계 여러 곳의 법이나 법안에는 ‘존엄사 법(Death with Dignity Law)’과 ‘죽을 권리(Right-to-Die)' 법 등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복수의 의사가 죽음의 약을 처방토록 하는 ‘적극적’ 안락사 법입니다. 우리나라 법은 의사와 환자 측 동의로 과잉 연명치료를 중지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소극적’ 안락사 허용 법입니다.

이 정도라도 본인의 뚜렷한 의사로 연명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유언을 남겨야 하겠다고 몇 번 마음먹고도 아직 실행 못한 본인이지만 이 글을 통해 불필요한 연명 조치는 절대 반대한다는 뜻을 남깁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