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2015년 음력 8월 4일 아침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흔까지 사셨으니 호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호상'은 '순산'처럼 무정하거나 무심한 말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 떠나시는 건 그 이별이 언제든 '호상'일 수 없고, 아기를 낳는 과정은 어떤 경우에도 '순(順)'하지 않습니다. 물론 '순산'의 사전적 정의는 '산모가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아이를 낳음.'이긴 합니다만.
아버지가 떠나시기 일년 여 전에는 시어머님이 떠나셨습니다. 백 번째 생신을 넘기고 가셨으니 그 또한 호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남은 자녀들에겐 여전히 슬픈 기억입니다. 세상의 속도는 빨라도 두 분과의 사별은 어제 일처럼 아픕니다. 어디서든 두 분 연배 어른들을 뵈면 눈이 젖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때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자유칼럼에서 오는 이메일은 대개 덤덤히 보아넘기지만 황경춘 선생님의 글을 대할 때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듭니다. 아흔이 넘으신 선생님... 안녕하실까, 여전하시겠지, 여전하셨으면... 선생님에 대한 생각 끝에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이 젖기 일쑤입니다. 오늘 받은 선생님의 글도 눈물로 읽었습니다. 선생님, 부디 건강하셔요!
| | | | | 먼 길 떠나기 전 할 일이 있다 | 2017.0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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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친구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친구들의 부음에 접하는 것이 오랜만이고, 특히 이 친구와는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기에 저의 충격은 컸습니다. 유복한 가정에tj 태어나 의사로 대성하고 자식들의 사업이 번창하여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즐기던 친구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말년 1년 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병석에서 신음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많은 재물과 사랑스러운 손자·손녀들을 두고, 빈손으로 저세상으로 떠날 때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의 빈소에서, 건강할 때 모습의 영정사진을 대한 저는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인생이 무상함을 다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70여 년 전 학창을 떠날 때 90여 명이었던 동기생 중, 남은 친구는 이제 다섯 명 내외입니다. 혹독한 일제 강점을 거쳐 한국전쟁과 ‘보리고게’로 대표되는 극심한 경제난도 이겨낸 우리 세대는 많은 풍상을 겪었습니다.
미국 고전 민주주의를 배운 프린스턴대 출신 한(漢)학자 이승만 박사의 일제 치하 친일·지주 세력과의 야합, 노령(老齡)으로 인한 실정, 그리고 비극적 하야, 파쟁으로 시종한 장면 책임제 내각이 부른 군사 쿠데타, 독재 군사정권과 싸워 이긴 민주화운동, 이어 열린 88 올림픽, 두 번이나 대통령을 탄핵재판에 회부한 ‘난숙(爛熟)한 민주주의, 100만을 넘는, 생각을 달리하는 여러 군중시위대가 사고 없이 끝나는 위대한 시민의식...이 모든 것을 보아 온 길고도 허무한 인생에 더 이상 큰 미련은 없습니다.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견디기 힘든 길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때마침 이웃 나라에서는 안락사(安樂死)에 관한 큰 논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 방송드라마 ‘오싱’의 작가인 하시다 스가코(橋田壽賀子) 여사가 쓴 안락사를 찬성한다는 기사가 유발한 시비(是非)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논쟁 끝에 작년 초에 국회가 존엄사법(尊嚴死法)을 통과시켜 2018년부터 시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라고도 불릴 만큼, 불치(不治)상태에 있는 환자 자신의 요청에 의해 불필요한 연명(延命)조치를 의사나 가족이 중지할 수 있게 하는 법입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에 난치병 환자의 요청에 의해 연명조치 중지를 도운 의사가 유죄 판결을 받은 예가 두 건이나 발생 해, 존엄사 법안을 초당적으로 제출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으나 반대 여론도 많아 아직 법안 제출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 하시다 여사가 종합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에 기고한 글에서, 30년 동안 혼자 살아왔고 가족도 없이 금년 91세가 된 자기는 치매에 걸리기 전 안락사를 원하며, 될 수 있으면 법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에 주거를 옮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글이 나온 후 일본 언론계에서는 안락사에 대한 찬반 토론이 재연되고, 분게이슌주도 잡지 기고자(寄稿者)를 중심으로 146명의 지식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60명이 회답을 한 결과는, 과반수인 33명이 안락사를 찬성, 20인은 존엄사에 한해 찬동하고, 반대 또는 선택을 보류한 사람은 7명뿐이었습니다.
이 잡지에 의하면 가장 많은 찬성 이유가 “사람에게는 자기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고, “주위 사람을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가 다음으로 많았다고 합니다.
현재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유럽의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의 네 나라와 미국 캐리포르냐 등 6개 주만이고, 존엄사법은 아시아에서는 한국 외에 타이완도 입법하였습니다. 스위스는 이주해 오는 외국인에도 안락사를 허용하지만, 유럽의 다른 세 나라에서는 자국민만 허용한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취직활동을 뜻하는 ‘취활(就活)’, 결혼 준비를 하는 ‘혼활(婚活)’에 이어 최근에는 ‘종활(終活)’이란 말까지 유행하고 있습니다. ‘종활’이란 인생을 마무리하는 여러 준비작업을 말합니다. 장례절차, 묘지 문제, 자산상속 등에 관한 유언 형식을 설명하는 글들이 언론매체에 많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글이나 방송에 종종 접합니다. 그러나 저는 차일피일(此日彼日)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빈소에 다녀온 뒤, 구체적으로 이런 준비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꾸짖고 있습니다. 다만 작년 말부터, 저의 인생을 정리하는 준비작업으로 남기고 싶은 기록이나 사진 등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선 서재에 질서 없이 방치된 책과 서류 그리고 오래된 편지부터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업 도중, 이미 세상을 떠난 해외 친구의 편지를 많이 발견했습니다. 30년 이상 일해 온 국제 민간 모임의 귀중한 기록 등은 지난번 회의 때 현 회장에게 클럽 보관용으로 넘겨주었습니다.
언제 정리가 끝날지, 진도가 느려 답답하기만 합니다. 정신이 맑을 때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서 초조해집니다. 얼마 전에는, 10여 년 계속해 아침 식전에 드는 고혈압 약을 하루 두 번이나 먹은 일이 있어, 뒤늦게 알고 종일 고민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실수가 또 없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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