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7

라일락 (2011년 4월 14일)

누구나 그럴까요? 화려한 봄은 저를 슬프게 합니다. 남의 집 마당에서 우아한 목련꽃도 마음을 아프게 하고 저희 집 베란다에 활짝 핀 군자란도 탄성 뒤엔 탄식을 자아냅니다. 저 모든 것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사람들, 아직 지상의 시민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저들을 볼 수 없는 사람들... 내 눈에 아름다운 것일수록 안타까움도 큽니다. 오늘은 연보라빛 라일락까지 피었습니다. 5월에 피던 꽃이 재스민보다 먼저 핀 것이 궁금하다가, 꽃들도 사람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보다 생각합니다. 라일락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셋방살이를 벗어나 처음 장만한 오래된 아파트의 3층 제 방 아래 좁은 뜰에 집에서 자라던 라일락을 옮겨 심어 주신 아버지. 훗날 제 두 여동생들도 그곳에서 신접 살림을 했으니 저희 세 ..

나의 이야기 2011.04.14

할머니 닮았다 트집 잡으시더니… [한겨레21 2008.02.01 제696호]

완경기 딸이 어머니를 인터뷰하다… 가장 슬펐을 때는 시어머니 돌아가신 때, 좋을 때는 ‘밤나’ ▣ 김흥숙 시인 길은 사람과 자동차로 어지럽지만 주홍빛 코트를 입은 어머닌 석양처럼 아름답다. 저 여인이 떡국 한 그릇으로 일흔아홉이 된다는 걸 누가 믿겠는가. 1월 셋쨋주 일요일 오후. 카페로 가는 길은 봄날 같아, 어디선가 어머니의 이름 같은 봄 매화가 “톡” 하고 열릴 것만 같다. 의 주문을 받아 어머니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 적은 많았지만 ‘인터뷰’한다고 마주 앉은 건 처음이다. 어색한 한편으론 어머니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되는 게 있지 않을까, 살짝 흥분도 된다. 너무 주관적인 대화로 흐르는 걸 막기 위해 객관적 사실 확인으로 시작했다. » 어머니는 지금도 석양처럼 아름답다. 어머니..

나의 이야기 2009.11.02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2009년 1월 28일)

꼭 일 년 만입니다. 두루마기 차림으로 차례 상에 제주를 올리시는 걸 보니 건너편에 앉아계실 할아버지, 할머니, 누대 조상님들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80여 년 낡은 무릎을 힘겹게 굽히고 앉아 가만가만 지난 일 년의 희로애락을 보고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부모님 앞에 성적표를 내놓은 초등학생입니다. 언젠가 아버지의 노트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신앙의 대상을 조상과 선산의 묘소에 두고 살아왔다. 내 조상이 위대하고 전지전능하지는 못할망정 당신들의 자손인 나를 사랑할 것이고 나 자신 그 분들로 인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엊그제 시립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230여 명의 홀몸 노인들이 합동 차례를 올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차례 상 앞에 섰을 그 분들을 생각하니..

한국일보 칼럼 2009.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