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다녀온 친구들을 만나고 나니 여행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 적지 않게 다녔던 해외 출장, 떠나는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잠들지 못해 토끼눈이 되곤 했었지요. 닫힌 공간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비행기에 '갇히는' 것도 싫었습니다. 왜 여행 생각은 고향 생각으로 귀결될까요? 문득 박상천의 시 '아버지와의 여행'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두어 번 아버지와 동행하여 집을 떠난 적이 있으니 저는 시인보다 운이 좋을지 모릅니다. 시집 <5679는 나를 불안케한다>에서 발췌 인용합니다.
아버지와의 여행
오늘 저는, 아버지와 처음으로 여행을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마흔이 되도록까지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 저는, 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갑니다.
父子 간의 첫 여행에
그러나 당신은 말없이 누워만 계십니다.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오월의 나뭇잎들이 팔랑거리는
차창 밖...(중략)
아버지의 눈빛이 무서워 보이지 않는 나이에 이르고 나니
이제,
어느 어스름 저녁 무렵
함께 집을 나서
고향 바닷가를 거닐다가
창 너머 바다가 보이는 조그만 주막에 들러
소주잔도 건넬 수 있을 텐데
그것조차도 마다하시고 기어이 떠나버리신 아버지.
오늘 이 여행은
아버지와의 첫 여행이자 마지막 여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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