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오래전 계간 '수필'에 썼던 글 '생강'을 만났습니다. 계간 '수필'을 만드시던 고 김태길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1988년인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시던 선생님이 상아탑 속 철학을 현실 속으로 가져오겠다는 포부로 '철학문화연구소'를 출범시키고 '철학과 현실'이라는 잡지도 창간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코리아타임스 기자로 선생님을 인터뷰하러 갔었지요.
그렇게 해서 맺어진 인연으로 선생님의 책, <소설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 두 권을 영역하느라 머리칼이 하얗게 세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현실 속 철학' 운동만큼이나 수필에도 큰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그때 가끔 제게 계간 '수필'에 원고를 달라고 하셨고 아래의 글 '생강'도 그렇게 쓰여졌습니다. 몇 년 몇 월호에 실렸었는지는 찾아봐야 하지만 언제 어디에 실렸는가 보다는 글의 내용이 중요하다 싶어 그냥 실어둡니다. 김태길 선생님... 그곳에서 편안하신 거죠?
생강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먹는 일에 열심이고 맛있게 먹는 사람은 부지런하고 낙천적이지만, 먹는 일에 게으른 사람은 다른 일에도 게으르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 같은 분의 일생은 먹을 것을 준비하고 먹이느라 애쓴 나날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어렸을 때를 돌아보면 늘 다섯 아이 먹일 것을 만드느라, 매일 매일의 식탁을 여러 가지 색의 영양으로 채우느라 종종걸음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제일 많이 아프게 한 아이가 바로 나였는데, 아기일 때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울지를 않아 젖때를 넘기기 일쑤였고, 조금 자라서는 입이 짧아 핀잔을 들었다. 당연히 몸은 가시처럼 말랐고, 머리와 몸통을 잇는 목은 너무 가늘어 코스모스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어머니, 아버지는 마른 딸아이 몸에 살을 좀 찌울 요량으로 동네 구멍가게에 부탁을 하여, 무엇이나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먹게 하고 매달 말에 한꺼번에 계산을 치르기로 하였다. 그 가게는 우리 집과 학교 사이에 있었고, 나는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그 가게 앞을 지나다녔다. 대청 마루를 개조한 구멍가게 좌판에 여러 가지 먹을 것이 즐비하게 펼쳐져 있었고, 선반엔 선반대로 벽엔 벽대로 또 다른 먹거리들이 쌓여 있고 걸려 있고 하였지만 구미를 당기는 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옥을 고쳐 만드는 바람에 가게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선 기둥에 걸린 작은 셀로판 주머니 띠를 보았다. 어떤 주머니에는 마른 멸치 몇 마리가 들어 있었고, 어떤 주머니엔 땅콩이 들어 있었는데, 나는 설탕물을 올려 말린 생강에 마음이 끌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술 마시는 사람들의 안주거리 아니면 한약 먹는 사람 뒷입거리로 거기 걸려 있었을 텐데, 왜 하필 그것이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때는 그걸 편강이라고 하는 줄도 몰랐고, 맨날 그거만 먹음으로써 가게 아주머니를 실망시킨다는 것도 몰랐다. 좀 자라면서 일부러 사먹진 않게 되었지만, 어떤 경로로든 손에 들어오는 건 반갑게 받아두고 먹었고, 지금도 우리 집 어딘가엔 편강 병이 놓여 있다.
빼빼 마른 초등학생에서 자의식이 강한 십대로, 혈기와 의기를 분간 못하는 이십대로, 회의와 불면으로 무거운 머리를 들고 가정과 직장 사이를 정신 없이 오가던 삼십대로 자라고 늙으면서도 생강을 좋아하는 버릇은 변하지 않았다. 마치 맘에 맞지 않는 사람에겐 싫은 내색을 감추지 못하고, 잘못된 일을 보면 상관없는 일에까지 끼어들고 늘 시시비비를 가려대는 불 같은 성정이 여전한 것처럼.
편강뿐만 아니라 생강이 들어간 음식은 무엇이나 좋아해서 한방차 하는 집에 가면 생강차, 수정과 먹는 일이 흔하고, 일식집에 가면 분홍색 생강 절임을 남들의 세 배는 먹는다. 껍질 벗기기 귀찮고 독한 냄새 싫다고 김치 담글 때 아예 생강을 넣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우리 집 김치엔 언제나 생강이 듬뿍 들어간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리만치 생강을 좋아하고 많이 먹어 왔는데, 최근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생강은 영험한 식물이어서 많이 먹으면 화이부동(和而不同)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것이다. 그 네 음절을 보는 순간 내 삼십여 년 묵은 생강 애호증이 단박에 이해되었다. 사람도 자신에게 없는 점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듯, 음식도 자신에게 결여된 성분을 가진 음식을 좋아하게 된다고 하는데, 내가 생강을 그렇게 줄기차게 먹어온 이면에는 화이부동하지 못하는 나를 바꿔야 한다는 무의식이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생강을 그렇게 먹었는데도 네 성격이 그 정도이니 생강의 효험도 사람에 따라 나타나는 것 아니냐고 조소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엔 그 동안 생강을 열심히 먹어 왔기에 그나마의 화(和)라도 성취한 것이니, 앞으로 더욱 열심히 먹어가며 노력한다면 삶을 마무리할 때쯤엔 정말 화이부동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다.
가시처럼 말랐던 몸에 이만큼 살을 붙인 것, 오 분이면 마셔버리던 차 한 잔을 삼십 분, 한 시간씩 걸려 마시게 된 것을 보면 그 희망이 아주 근거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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