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우리 형님, 지수씨 (2012년 11월 28일)

divicom 2012. 11. 28. 23:15

내일 아침, 존경하고 사랑하는 형님 지수씨와 아주 이별합니다. 엊그제 오랜만의 가족모임 자리에 도착하자 마자 쓰러지신 형님, 119대원들과 의료진의 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와 염원을 뒤에 두고 숨을 그치셨습니다. 응급실에서 무수한 코드를 꽂고 누워 계시던 모습, 입관 직전 평화로우시던 모습도 보았지만, 지금 제게 떠오르는 건 수줍게 그러나 밝게 웃으시던 평소 모습뿐입니다.


형님과 제가 시누이와 올케로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연락도 없이 형님댁에 가서 "형님, 고혈압에 오이가 좋대요" 하며 오이를 풀어놓자 형님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시고 "어어, 그래 고맙네" 하셨지요. 저는 형님이 '..네'로 말씀을 마무리하시고 저를 '자네'라고 부르시는 게 그리도 좋았습니다. 


일찍부터 부모님의 책임을 나눠 지고 직장생활을 하며 아우들을 부양했던 형님, 그러느라 좋아하시는 책을 맘껏 보지 못한 걸 늘 안타까워하시며 연세가 들어가면서도 책을 놓지 않으셨지요. 음악은 또 얼마나 좋아하셨던가요? 저와 함께 사는 당신의 막내 아우가 당신 좋아하시는 클래식 소품들을 녹음한 CD를 드렸을 때 좋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던 형님답게 쓰러진 후 몇 시간 되지 않아 숨을 거두셨지요. 

형님, 사랑하는 정지수씨, 사소한 것을 보내드려도 늘 크게 받으시고 훨씬 큰 것으로 응답하시면서도 더 많이 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 하셨지요.


형님, 언젠가 현금 봉투에 함께 넣어 보내주신 작은 핑크색 메모지, 생각나세요? 그 피자헛 메모지를 몇년째 보관하고 있는데, 이게 제게 주신 마지막 필적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애 많이 썼네. 수북수북 쌓이는 낙엽처럼 幸福이 쌓이길 바라네... 나누면 갑절이 되는 기쁨을 나누어봄세. 작은 마음이네. 미안하이.  시누이가" 형님의 글씨처럼 자연스러우며 정답고 소박한 달필이 또 있을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메모 받은 날짜를 기록해두었을 걸 하고 가슴을 치다가 형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깟 날짜가 무슨 소용인가, 자네가 내 마음 알고 내가 자네 마음 아는데, 허허...'


비록 한 나무에서 나온 두 가지는 아니지만 형님과 같은 분을 시누이로 만났으니, 저는 참으로 운 좋은 사람입니다. 이십 대의 제가 형님댁에 놀러가 미나리를 다듬는다고 머리 부분을 떼어내는 걸 보고 형님이 물으셨지요? "자네, 미나리 처음 다듬어보나?" 그때 제 무지에 놀라시고도 태연하게 말씀하느라 애쓰셨지요? 제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네" 하자 형님이 웃으시며 미나리 다듬는 법을 가르쳐주셨지요. 


형님은 그림도 좋아하셨지요. 어느 해던가, 제 아우 수자가 전시회를 하던 여름, 빗속에 꽃을 들고 활짝 웃으며 찾아주신 것도 바로 어제 일처럼 또렷합니다. 형님의 사랑을 못 잊어하던 수자가 어젯밤 형님 앞에 두 번 절했지요. 물론 형님은 꼭 그날 인사동에서처럼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고요.


형님, 사랑하는 지수씨, 아까 입관할 때 보니 형님은 벌써 저 높은 곳에서 형님이 벗어놓은 껍질과 아직 살아 남아있는 자들을 안쓰럽게 보고 계시더군요. 형님,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낙엽처럼 행복이 쌓이는" 곳에서 웃고 계시어요. 형님, 평생 베풀어 주신 사랑,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