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해경의 죽음, 그리고 정신대 (2011년 12월 14일)

divicom 2011. 12. 14. 09:24

오늘 아침 10시 인천 해경부두에서 인천해양경찰서 이청호(42) 경장의 영결식이 열립니다. 아시다시피 이 경장은 인천 소청도 인근 우리 쪽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숨졌습니다. 고인은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경장은 중국 선장 청다웨이에게 왼쪽 옆구리를 칼로 찔려 숨졌다고 합니다. 중국 선장은 먼저 조타실 쪽문으로 진입한 이낙훈(33) 순경을 찌른 후 이 경장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이 순경과 이 경장 모두 방검조끼 틈 사이 왼쪽 옆구리를 찔린 것을 볼 때 공격자가 우리 해경이 입고 있는 방검조끼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경들이 입는 방검조끼는 배와 등은 보호하지만 옆구리는 보호하지 못합니다.

 

현재 해경의 방검복은 개당 50만 원 선이지만 몸 전체와 중요부위까지 보호하는 방검복은 80만원에서 100만원을 호가합니다. 철도경찰대와 서울시 사법경찰대는 몸 전체를 보호하는 방검복을 입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선원들은 죽창과 삽은 물론 손도끼, 낫까지 휘두르며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해경의 위험수당은 고작 월 4만 원이라고 합니다.

 

살 만큼 산 사람에게 죽음은 안식이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에게 죽음은 재앙입니다. 이 경장은 나라를 잘못 만나 마흔둘 한창 나이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2008년 9월엔 박경조 해경 경위가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공격받고 실종된 지 17시간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에게 현충원에 묻히는 게 무슨 영광입니까.

 

개인과 개인의 관계나 국가와 국가의 관계나 마찬가지입니다. 약하고 비굴하게 보이면 평생 그런 대우를 받습니다. 중국 정부는 사건 발생 후 하루가 지난 후에야 '유감'의 뜻을 밝혔습니다. “한국 해경이 숨진 불행한 사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유감'은 '사과'도 아니고 '위로'하는 말도 아닙니다.

 

중국이라는 ‘큰 나라’가 대국답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것도 좋지만 그 나라의 눈치를 보느라 불법조업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중국 선원들에게 합당한 조치를 하지 않은 이 정부를 비판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이 경장과 박 경위와 같은 억울한 죽음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이 나라를 우습게 보는 건 중국 정부와 어민들만이 아닙니다. 또 다른 이웃인 일본도 그렇습니다. 종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해온 한국정신대협의회(정대협)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열어온 ‘수요 집회’ 1000회를 맞아 조금 전 대사관 앞에 '평화의 비'를 세웠습니다.

 

일본의 대표적 우익 신문인 산케이신문은 오늘 "일본의 대한감정 악화는 피할 수 없게 됐으며, 이번 달 17~18일로 조정이 진행 중인 이명박 대통령의 방일에도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고 합니다. 높이 120~130센티미터의 앉아 있는 소녀상과 빈 의자 하나, 소녀의 모습 뒤 할머니의 그림자로 구성된 '평화의 비.' 산케이는 이 비가 대사관 앞에 건립된 건 “외교공관의 존엄에 관한 중대한 문제"라는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일로 일본 정부가 토라져 방문을 반기지 않으면 가지 않으면 됩니다. 오래 전에 풀었어야 할 문제를 나라의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미루었으니 지금이라도 풀어야 합니다.

 

중국 정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불법어로 선원들에게 너그럽고, 일본 정부를 불쾌하게 할까봐 정신대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한미 FTA를 기습 비준하여 미국 정부를 돕는 정부, 이 정부의 비굴함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경장, 참으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