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여 검사와 여 검사 (2011년 11월 28일)

divicom 2011. 11. 28. 18:30

지금 인터넷 세상은 너무나 대조적인 두 명의 여 검사로 인해 시끄럽습니다. 한 사람은 사건 청탁과 관련해 벤츠 승용차와 500만 원대 명품 핸드백을 받아 물의를 일으킨 후 수도권의 검찰청에 사표를 낸 검사입니다. 이 검사는 부산 모 법무법인에 있는 변호사로부터 그런 고가의 물품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검사는 A씨 혹은 ‘벤츠 여검사’로 불릴 뿐 이름이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대구지검 형사3부 백혜련 수석검사(44·사법연수원 29기)입니다. 그는 지난 21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최근 몇 년간 검찰의 모습은 국민들이 볼 때 결코 정의롭게 보여지지도,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고 보여지지도 않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후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백 검사는 이 글에서 검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으나 최근에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검사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적도 많았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이 고도로 요구되는 사건들의 처리에 있어 검찰이 엄정하게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며 제대로 된 사건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검찰이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벤츠 여 검사’가 검찰을 떠나는 건 다행이지만 변호사가 되어 여전히 법 집행에 관여할 테니 한심합니다. 백 검사가 검찰을 떠나는 건 슬프고도 안타깝습니다. 검찰에 백 검사와 같은 사람이 많았으면 백 검사가 검찰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동행이 없었거나 너무 적어 외롭고 괴로우니 떠나는 것이지요. 부디 백 검사의 진정이 많은 검사들의 양심을 흔들어주기를, 그리하여 국민이 검찰을 신뢰할 수 있게 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래에 백 검사가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 전문을 옮겨둡니다. 

 

 

이제 떠나렵니다.

 

막상 사직할 생각을 하고보니 좀 더 열심히 일할 것을 그랬다는 후회와 반성, 그리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의 얼굴이 밀려듭니다. 제가 검사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소명이라 생각하고 떠나기 전 감히 몇 마디 하고자 합니다.

 

검사는 긍지와 자부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검사가 되고 싶어 검찰을 지망했고 그간 검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기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아니 오히려 저희 검찰이, 검사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적도 많았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검찰에 대한 언론들의 비판, 정치권의 조롱, 법원의 무죄판결, 국민들의 차가운 눈초리 등등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는 검찰의 모습을 보며 검사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저희 검찰이 이렇게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항상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여러 윗분들로부터 질문을 받았지만 당시 사실 '조직에 누가 될까봐', 더 솔직하게는 '용기가 부족하여' 솔직한 답변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역사적 연원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되는 큰 사건,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이 고도로 요구되는 사건들의 처리에 있어 저희 검찰이 엄정하게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며 제대로 된 사건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란 정의로울 뿐만 아니라 정의롭게 보여져야 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검찰의 모습은 국민들이 볼 때 결코 정의롭게 보여지지도,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고 보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저희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받지 못하고 질타를 받는 가장 큰 요인인 것입니다. 아무리 형사부에서 수만 건의 고소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해도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단 하나의 사건을 공정하게 제대로 처리를 하지 못하면 검찰이 쌓아올린 신뢰는 바로 무너져 내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의 대화 당시 '검사스럽다'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지키려 했던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었는데 지금 검찰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어찌하다 저희 검찰이 여당 국회의원에게조차 '정치를 모르는 정치검찰'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검찰이 현 상황을 타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하여, 우리 검찰의 모습에 대하여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 검찰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국민과 언론만을 탓하기 보다는, 너무 엄격한 증명으로 무죄를 써댄다고 법원을 비판하기 보다는 정말 저희 검찰이 그동안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점은 없었는지, 저희 검찰의 기준과 상황판단이 시대흐름에 너무 뒤쳐져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 점은 없었는지, 실체적 진실은 별론으로 하고 사건을 처리하는 절차상 공정성의 문제는 없었는지 한번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물론 저와 의견이 다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검찰내에도 이런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런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주는 것이 저희 조직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추가로 한 마디 더 말씀드린다면 요즘처럼 대검과 일선 사이의 간극이 이렇게 넓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대검과 일선의 현실 인식의 차이, 소통의 부재가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검찰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인 구성원들간의 일체감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검사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점차 잃어가며 일선 검사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상실감, 업무에 대한 낮은 행복지수를 위에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대검의 '검사 직접수사 지침' 처리과정은 지침의 당부를 넘어 이러한 간극과 함께 일선과 대검의 '소통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생각합니다. 일선의 심각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대검에서는 그 흔한 토론회 한 번 개최하지 아니하고 일방적으로 지침을 통보하였습니다. 아무리 올바른 제도나 지침이라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고 구성원들과의 교감이 없는 제도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그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법입니다.

 

요즘 정치권에서조차 '소통'이 화두입니다. 소통하지 못하는 조직은 구성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없고 결국 시대흐름을 읽지 못한 채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돌아올 사개특위의 높은 파도 앞에서 검찰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제라도 반성할 점은 반성하며, 검찰 구성원 및 국민들의 목소리에 열린 마음으로 귀기울이고, 미래를 위해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만이 검찰이라는 큰 배가 좌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저희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염원하는 전국 검사들의 뜻을 모아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전달하고자 합니다. 먼저, 그동안 검찰이 일부 정치적 사건을 투명하고 엄정하게 처리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는 국민의 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 중략 … 저희들은 앞으로 정치적 사건을 포함한 모든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어떠한 압력도 거부하고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것이며 수사과정에서 국민의 인권보장을 더욱 철저히 할 것을 국민들에게 약속드립니다.’

 

이 글은 2003. 3. 9.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당시 전국 평검사회의 대표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던 선언문입니다. 그때의 들끓던 평검사들의 열정이 그립고, 그때의 반성과 다짐이 가슴에 사무쳐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검찰에 있는 동안 좁은 소견으로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분들은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고 무엇보다도 제가 사직함으로써 업무가 가중될 저희 청 검사님들의 용서를 바랍니다.

 

그럼 검찰의 모든 구성원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저는 다른 곳에서 당당한 법조인으로 바로 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