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민이 경찰을 '폭행'할 때 (2011년 11월 28일)

divicom 2011. 11. 28. 11:07

토요일 (26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에서 박건찬(44) 서울 종로경찰서 서장이 참가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오후 9시30분쯤 박 서장이 시위대 선두에 있던 야당 대표들을 만나기 위해 시위대 사이로 걸어가던 중 시위대가 박 서장의 모자를 벗기고 왼쪽 어깨 계급장을 뗐으며 이 과정에서 박 서장의 안경이 부러졌다고 합니다.

 

당시 10여명의 사복경찰관이 박 서장을 둘러싸고 경호하고 있었지만 사태를 막지 못했다고 합니다. 종로경찰서는 동영상을 분석해 어제 오전 김모(54)씨를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그의 집에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김씨는 지난 8월 캐슬린 스티븐스 당시 주한 미국 대사의 차량에 물병을 던졌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경찰은 또 채증 사진을 분석해 다른 용의자들도 검거 중이라고 합니다.

 

이강덕 서울경찰청장도 어제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공무 수행 중이던 경찰서장이 폭행당하고 경찰관 38명이 부상하는 등 묵과할 수 없는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며 "폭행 당사자와 불법 행위 가담자, 집회 주최 측에도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습니다.

 

집회를 주최한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측은 "경찰의 과도한 집회 방해로 참가자들이 격앙돼 있는 상태에서 박 서장이 정복 차림으로 시위대로 들어온 것은 폭력을 유도해 시위대의 도덕성에 흠을 내려는 꼼수"라고 주장했습니다. 토요일 집회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집회였으며 경찰 추산 2,200여명, 주최측 추산 3만 명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 기사를 읽다 보니 박 서장을 ‘경호’하는 경찰관들은 모두 사복을 하고 있었는데 왜 박 서장만은 정복을 하고 있었는지, 집회 주최측 주장대로 “시위대의 도덕성에 흠을 내려” 일부러 그랬는지 궁금합니다. 토요일보다 훨씬 추웠던 23일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쏘게 했던 이강덕 서울경찰청장, 그날의 물대포가 어제의 사태를 촉발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이 청장과 박 서장,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는 정부와 여당이 이 “묵과할 수 없는 폭력 사태”가 왜 빚어졌는지, 국민이 왜 추운 날 옥외집회를 열 수밖에 없었는지 아는지 궁금합니다.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는 대신 “국민 여러분, 추운데 여러분이 이런 집회까지 열게 하여 죄송합니다. 제 계급장을 떼어 여러분의 노여움이 가실 수 있다면 계급장을 반납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건지 궁금합니다.

 

박 서장을 '폭행'한 건 김모씨와 소수의 시민들이지만, 경찰은 시위대 전체에게 물대포를 쏘았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보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건 그 개인들의 문제이지만 경찰이 시민에게 취하는 행동은 공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김모씨 등 소수가 박 서장을 '폭행'한 것과 경찰이 시위대에게 행사한 '폭력'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 소수의 행동을 빌미삼아 시민(국민) 전체를 겁주려 하면 안됩니다.

 

경찰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기억할지 모르지만 시민(국민)은 그들의 부모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을 있게 하고 그들을 먹여 살리니까요. 그들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거나 잘못할 때 그들을 야단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잊게 되면 시민의 훈계 또한 강력해질 것입니다. 공직자들이 그 사실을 어서 빨리 기억해내어 더 심한 사태를 예방하기 바랍니다.

 

*위의 글을 쓰고 10시간이 지난 지금 박 서장을 '폭행'한 사람은 김모씨가 아니고 '종로경찰서 강력팀 소속 경찰관'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민중의소리>에 포착된 연속촬영사진에서 해당 경찰관은 종로경찰서장의 얼굴을 가리며 보호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박 서장의 얼굴을 감싸는 장면도 보인다고 합니다. 서울경찰청이 이 장면의 사진을 배포하고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언론이 보도하는 과정에서 '폭행'으로 돌변한 것이라고 합니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도 해당 사진이 왜 '폭행' 사진이 되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니 '경찰의 헐리우드 액션'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폭행' 사건에 '불법이 합법을 집단 폭행' '경찰서장이 얻어맞는 나라' '경찰서장이 불법시위대에 맞는 나라'라는 선정적 제목을 달아 1면 톱기사로 보도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