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 박원순 후보를 응원하러 광화문 희망콘서트에 갔다가 훌륭한 자원봉사자들을 만났고, 그 중 몇 분과는 책을 주고받았습니다. 선물받은 책 중에 경제학자 이정전 박사의 <경제학을 리콜하라:recall the economics>가 있는데, 이 책은 경제학 서적이라기보다는 철학책입니다. 현재와 무관하게 과거의 철학 이론을 연대기적으로 소개하는 '철학사' 책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와 상황을 고금의 철학이론을 통해 접근하며 해결책을 강구하는 책입니다.
우선 주마간산(走馬看山)한 후에 다시 촘촘히 읽어보려 하는데, 재미있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무엇보다 이론과 현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어 이 책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고, 안타까운 것은 서울대 경제학 교수 중에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김수행 교수 한 분이 서울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강의하다가 은퇴한 후 대가 끊겼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곳저곳 다 재미있지만 제가 돈을 빌려 쓰고 있어서인지 '사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부분에 눈이 갑니다. 기원전 2100년경 편찬된 함무라비 법전에도 '과도한 가격과 이자'를 징수하는 사람을 죄인으로 처벌하는 법이 명문화되어 있었고, 서양에서는 중세까지도 사채업을 '사회악의 한 축'으로 보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돈을 빌리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보았는데, 첫째는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둘째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첫 번째 경우에는 사업으로 소득이 창출되니 이자 지불이 당연한 것이지만,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출은 소득을 창출하지 않기 때문에 이자를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런 행위를 맹렬히 비난했다고 합니다.
"대체로 보면, 개인적 필요로 돈을 빌리는 사람은 가난하거나 불우한 사람들이며,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부자이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는 경제적으로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는 관계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사채업이 전염병처럼 창궐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철학을 잊어가고 철학책을 읽지 않는 것과 관계가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우리 사회가 학문은 가르치되 '아는 대로' 살게 하지는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경제학자인 이정전 박사는 '경제학을 리콜하라'고 했지만 우리의 정치를 생각하면 정치학도 리콜해야 하고, 우리의 법을 생각하면 법학도 리콜해야 합니다.
'많은 것은 돈밖에 없는데' 그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꼭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돈이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지적(知的)으로 알려주는 '돈 사용설명서'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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