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와의 '소통'에 나선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연일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소통'은 좋은 건데, 10월 26일 서울시장 선거에서 거의 무명이던 박원순 후보를 승리하게 한 건데, 왜 '소통'하는 홍 대표가 비난을 받을까요? 내막을 알아보지요.
11월 1일자 중앙일보에 보면 그가 전날 홍익대 앞 호프집에서 대학생들과 맥주를 마시며 안철수 서울대 교수에 대해 한 얘기가 있습니다. “안 교수가 정치판에 들어오면 한 달 안에 푹 꺼진다.” “대한민국에서 컴퓨터 바이러스 하나 갖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겠나.” “대한민국 정치판은 밖에서 프레시(fresh)한 사람이 들어와도 망가지게 돼 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정치판에 들어와도 이들을 이지메(집단 따돌림) 하고, 키워주지 않는 게 정치판이다. 밑에서부터 커 올라간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가 신비주의로 등장해 반짝한다고 해서 (나라를) 맡길 수 있나.”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가 무산된 것과 관련해서는 “더러워서 정치를 못 하겠다. 여야 대표가 합의한 것도 (민주당이) 안 지킨다. 내년 국회에는 (씨름선수 출신인) 강호동이나 이만기를 데려와야겠다. 한판 세게 해뿌리던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중앙일보가 정리한 주요 발언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여학생 등에게) 남자를 사악한 거 만나면 아무리 돈 많고 권력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남자가 좀 어리숙해야 한다. 똑똑하면 꼴값을 한다." "내가 겨우 3개월 전에 주류가 됐다. 그런데 꼴같잖은 게 대들고 X도 아닌 게 대들고. 이까지 차올라 패버리고 싶다. 내가 태권도협회장이다.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더러워서 참는다."
홍 대표는 대학 시절 미팅했던 이화여대생 얘기를 하면서 그녀가 자신이 출신 고등학교를 얘기하자 만난 지 30초도 안 돼서 일어났다며 “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이대거든, 전여옥한테 내가 ‘이대 계집애들 싫어한다’ 이런다고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1일 당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사과했다고 합니다. ‘꼴같잖다’는 발언은 “울컥하는 마음으로 말한 것인데 죄송하게 됐다. 정중하게 사과한다”고 하고, ‘이대 계집애들’이라고 한 것은 “특정 대학 학생을 대학 때 4년 내내 싫어했다는 경험을 직접화법으로 설명했던 것인데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다. 어쨌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홍 대표는 어젯밤 TVN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 20대 시민패널 20여명과 토론을 벌이면서도 집중 난타를 당했다고 합니다.
연합뉴스 기사를 보니 대학 4학년인 김기윤씨가 "한나라당을 생각하면 블루칼라에 고급 오픈카를 타고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달려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하자 홍 대표는 "한나라당뿐 아니라 정치인 이미지가 다 그렇다"고 맞섰다가 다른 4학년생 황귀빈씨로부터 "그런 생각이 서울시장 선거 패배의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벌인 것이 가장 큰 실패요인"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홍 대표는 "네거티브와 검증은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청문회를 통해 임명된 사람들의 82%가 소위 5대 의혹을 저질렀다. 검증 강조하신 분이 정작 현 정부의 인사난맥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왜 가만히 있었느냐"는 반격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한미 FTA의 쟁점인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 얘기를 하다 "볼리비아에서는 미국계 회사인 벡텔이 상수도 사업을 유치해 갑작스레 수돗세를 올려놓고 (서민들이) 수돗물 대신 빗물 받아 쓰는 게 손해가 된다고 정부에 항의하는 등 폐해가 여럿"이라는 지적을 듣자 "한국이 남미 볼리비아처럼 형편없이 당할 나라냐"며 잠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를 보니 홍준표 대표는 경상남도 창녕군 출신으로 대구 영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 1977년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에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임관됐으며 1995년 사직한 후 변호사로 개업했고, 김영삼 당시 신한국당 총재의 권유로 1996년에 신한국당에 입당, 제15대 국회의원(서울 송파구 갑)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총선 당시 동협의회 총무 오 아무개 씨에게 2천4백만원의 선거운동비를 주고 허위 지출보고서를 제출한 혐의로 기소되어 당선 무효되어 의원직을 상실했으며, 2001년 서울 동대문구 을 선거구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권에 복귀,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홍 대표의 이력과 최근의 발언들을 읽으니 새삼 인생과 세상사가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일은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보지 않은 '소통' 마음에도 없는 '소통'을 억지로 하려니 자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홍 대표가 박원순 서울시장과 같은 경남 창녕 출신이라니 역시 출신지와 인격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도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이화대학생과 미팅할 때 출신 고등학교 얘기를 하자 그 여학생이 일어나 나갔다고 하지만, 글쎄 과연 그랬을까요? 설사 그랬다 해도 그건 그 학생 개인의 문제인데 20대의 해프닝을 60세가 다 될 때까지 기억하며 이화대학생 일반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다니, 이게 상식적인 처사일까요?
홍 대표는 또 자신의 말이 거친 것은 '깡패 잡는 검사'를 오래해서라고 했다는데, 사법연수원 시절을 감안하지 않고 사법시험 합격때부터 검사 노릇한 것으로 쳐도 검사는 13년했지만 정치판엔 15년이나 있었습니다. 그이보다 검사를 더 오래 하고도 품위있는 언행을 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참 불쾌할 '일반화'이고 고정관념입니다. 그러고 보니 박원순 시장도 검사를 지냈군요.
이화대학생 하나 때문에 그 학교 학생 전체를 폄하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이 오류는 오류 중에도 가장 저차원의 오류입니다. 홍 대표가 발설하지 않은 '일반화의 오류'와 고정관념이 얼마나 많을지, 그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 나경원 후보에게 "집에서 푹 쉬세요"라고 한 것이 그가 여성 정치인들에게 품고 있던 고정관념 -- '여자가 무슨 정치!'라고 생각하는--을 드러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시장선거 후에 '이건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라'고 했던 홍 대표. 그가 연일 보여주는 비상식적 언사를 생각하면 한나라당의 미래와 태권도협회의 앞날이 걱정되지만 그의 잘못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젊은이들이 있으니 나라의 장래까지 암울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학생의 날'입니다. 학생 여러분, 홍준표 대표든 누구든 부조리한 권력 앞에서 주눅들지 마시고 패기있게 사세요! 결코 미워하며 배우지는 마셔요. 홍 대표가 고려대 나왔다고 고려대 비난하지 마시고, 홍 대표가 남자라고 남자를 미워하지도 마세요. 절대로 그와 같은 사람은 되지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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