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박원순 시장과 서울 시민께(2011년 10월 27일)

divicom 2011. 10. 27. 08:32

어젯밤 늦도록 개표 방송을 지켜보며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후보가 '아마추어'인 시민 후보에게 패하는 것을 보며 새삼 시민의 힘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럴 때 바로 그 시민 후보 원순씨의 가슴이 어땠을지 만나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원순씨가 오늘 새벽 0시 10분쯤 발표한 '서울 시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는 그런 그의 마음이 절절합니다.

 

난생 처음으로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적 행동을 해 보았습니다. 행동이라고 해보았자 글을 쓰는 것뿐이었지만요. 원순닷컴의 '이 사람 박원순'에 '원순탐구생활'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을 쓰고, 블로그와 칼럼(코리아타임스 칼럼 Random Walk)에도 원순씨를 응원하는 글을 여러 차례 썼습니다. 지난 토요일 Random Walk에 쓴 글은 내부 검열에 걸려 인쇄되지 못했지만 이 블로그의 'The Korea Times' 섹션에 실려 있습니다.

 

원순씨가 아래의 '서울 시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밝힌 것처럼 원순씨의 승리 뒤엔 무수한 사람들의 도움이 있습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안철수 교수, '나꼼수' 방송으로부터 박원순 펀드를 사고 후원금을 보낸 사람들, 또 지난 토요일 광화문 광장을 채웠던 평범한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그를 도운 사람은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서울시장이 된 원순씨는 가능하면 빨리 그 모든 빚을 잊어야 합니다. 그를 도운 분들도 바로 오늘부터 자신이 원순씨를 도왔다는 사실을 잊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정치판이 지금처럼 천박한 '끼리끼리 도가니'가 된 것은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공익보다는 사익을 추구하고, 그런 사람들의 도움으로 당선된 정치인들이 부정한 '은혜 갚기' 즉 '보은 인사'를 하며 '보은 정책'을 폈기 때문입니다.  

 

원순씨를 도운 사람들 중엔 '내가 네 당선을 도왔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원순씨를 서울시장으로 만든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한나라당식 나경원식 푸념입니다. 원순씨를 지지하고 후원해 온 모든 이들은 '내가 믿고 존경하는 사람을 위해 진력했는데 그 사람이 당선되었으니 나도 행복하다'는 마음으로 그가 당당히, 공정하게 '시민의 시장'으로서 뜻을 펼칠 수 있게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길 바랍니다. 

 

원순씨에게 기회를 주신 서울 시민들께도 당부합니다. 기회를 주셨으니 이제 시간을 주십시오.

'박원순을 뽑아 주었는데 왜 서울이 변하지 않는 거야!'라는 말씀을 너무 빨리 하지 마시고 한나라당 시장 10년 동안 악화된 서울을 원순씨가 바로 잡아 가는 모습을 참을성있게 지켜봐 주십시오. 그의 진정이 허세로 가득한 디자인을 지우며 시민의 삶을 개선해나가는 것을 응원해 주십시오.

 

선거 유세 기간 내내 원순씨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로 일관했던 한나라당은 앞으로도 박원순 시장 흠집내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시도가 있을 때마다 원순씨는 '결코 시장직을 이용해 훗날을 도모하거나 사리사욕을 취할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며 오히려 그의 편을 들어 주십시오. 원순씨가 '제2의 노무현'이 되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 패배가 확실해진 어젯밤 11시17분쯤 당사를 떠나며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들은 다 승리한 상황"이라며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국민의 사분의 일이 살고 있는 서울, 사실상 나라의 심장 노릇을 하는 서울에서 대패한 것은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닙니다. 명약관화한 패배입니다. 한나라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마음이 표현된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는 "노무현 정권 때는 (재보선에서) 40대 0까지 가지 않았냐. 8곳에서 완승한 것을 보면 이번 선거는 의미있는 선거이며 앞으로 수도권 대책에 집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수도권 대책' 속엔 박원순 시장 발목 잡기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서울 시민 여러분, 원순씨를 시장으로 갖게 된 우리의 행운에 감사하며 지금까지 그를 응원했던 바로 그 마음으로 그를 응원해 주십시오. 서울이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이 되어 나라 전체를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꾸는 데 앞장설 수 있게 그의 편이 되어 주십시오. 원순씨, 서울시장이 되어 주어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당신을 믿고 응원하겠습니다.

 

 

 

 

시민이 권력을 이겼습니다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습니다
 
- 서울 시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

 

서울 시민여러분
감사합니다.
 
먼저 저와 함께 경쟁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나후보를 지지한 시민들의 뜻도 함께 존중하겠습니다.
 
야권 통합 시민후보 박원순은 오늘 이 자리에서 서울시민의 승리를 엄숙히 선언합니다.
 
시민은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습니다.
상식과 원칙이 이겼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선택한 것입니다.
 
통합과 변화의 길에서 함께 해 주신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시민사회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더 큰 시민의 이름으로 하나 되어 이겼습니다.
연대의 정신은 시정을 통해 구현될 것입니다.
 
박원순은 시민의 일원으로서 당선된 것입니다.
시민의 분노, 지혜, 행동, 대안이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이뤄내 승리한 것입니다.
시민이 시장이라는 정신은 온전히 실현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서 돈이 없는 제게 자금을 만들어 주셨고, 조직이 없는 제게 시스템이 되어주셨고, 공격을 당하는 제게 미디어가 되어주셨고, 책상 위의 정책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1995년 시민의 손으로 서울 시장을 직접 뽑은 이래 26년 만에 드디어 이번 선거에서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민주주의의 정신을 완성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새로운 서울, 박원순이 하면 다릅니다’, ‘내 삶을 바꾸는 첫 번째 시장’은 박원순의 슬로건이고 우리 모두의 슬로건입니다.
 
시정 운영의 원칙은 선거의 과정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 사람이 행복하다’는 시정의 좌표가 될 것입니다.
사람과 복지 중심의 시정이 구현될 것입니다.
 
여러 번 약속드렸습니다.
제일 먼저 서울시의 따뜻한 예산을 챙기겠습니다.
서민에게는 11월이면 벌써 한 겨울입니다.
취임 즉시 공무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시의원들과 생각을 조율해 따뜻한 겨울의 월동 준비를 하겠습니다.
 
‘내 삶을 바꾸는 첫 번째 시장’은 커다란 구호가 아닙니다.
시민들의 고단한 삶에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입니다.
시민들 삶 곳곳의 아픔과 상처를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보편적 복지는 사람중심의 서울을 만드는 새로운 엔진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천만 서울시민 여러분의 위대한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저 박원순, 시민의 편에 서서 시민이 가라는 길을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