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나경원 씨 때문에 (2011년 10월 15일)

divicom 2011. 10. 15. 08:41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아름답고 똑똑한 여성을 좋아합니다. 겸비하기 어려운 두 가지 행운 혹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감사하며 다른 동료 인간들을 위해 무언가 해주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우면서 똑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움의 포로가 되기 쉽고 똑똑한 사람은 똑똑함의 포로가 되기 쉽습니다. 나경원 씨가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되었을 때 저는 그이에 대해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예쁘장한 얼굴, 판사를 하다 정치세계에 들어온 경력이 증명하는 똑똑함... 그러나 그이가 요즘 저를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그이만은 여느 한나라당 사람들과 다르기를 바랐습니다. 상대후보의 흠집을 내는 네거티브 선거운동보다는 새로운 정책을 얘기해주길 바랐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 시정을 대권 도전의 교두보로 삼고 눈에 보이는 성취를 추구했던 두 명의 시장과 자신이 어떻게 다른지, 새로운 비전과 정책으로 시민들을 위로해줄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즘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는 다른 한나라당 정치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창의적인 정책을 내놓기보다는 상대후보 흠집내기에 혈안입니다. 이 사람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절망이 일어나 시집을 펼칩니다. 깅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에 실려 있는 '절망'입니다. 

 

 

절망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본래 이 시에 나오는 '절망' '풍경' '속도' '졸렬' '구원'은 모두

한자로 쓰여 있습니다. 제가 읽는 이들의 편의를 생각하여 한글로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