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더 없는 행복 (2011년 10월 1일)

divicom 2011. 10. 1. 08:15

마침내 시월입니다. 그젠 비가 내리고 어젠 서늘한 바람이 구석구석 더위의 잔재를 씻어냈습니다. 시월과 함께 차가운 기운이 세상을 채웁니다. 이 기운이 자꾸 퍼져 부글부글 끓던 세상이 차차 식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요? 세상은 점차 소음의 도가니가 되어왔습니다. 어딜 가나 소음... 이런 곳에선 베토벤도 소음, 파가니니도 소음... 언어를 포함한 모든 소리, 풍경마저 소음입니다.

 

오랜만에 법정스님의 <말과 沈默>을 펼칩니다. '잠길 침'에 '잠잠할 묵'... '침묵'이라는 글자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223쪽 '더 없는 행복'이라는 제목의 글은 "복잡한 세상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티가 없이 안온한 것" 이라는 정의로 시작합니다. 제 마음은 가끔 흔들리고 때로는 걱정도 하니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한 걸을 수 있고, 계속 걷다 보면 가야 할 길이 아주 조금씩이나마 줄어들겠지요. '더 없는 행복'에 대한 정의 중에서 두 가지를 옮겨둡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말고 어진 이와 가까이 지내며,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존경할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 어리석은 사람들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내는 일이 많습니다. 화내는 것처럼 어리석고 흉한 일은 없습니다. 주변을 둘러 보면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을 존경하며 그들을 가까이 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불행한 이유가 바로 거기 있습니다. 

 

"자기 분수에 알맞는 곳에 살고, 일찌기 공덕을 쌓고 스스로 바른 서원을 세우고 살아라.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 아무래도 서울은 제 분수에 맞는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분수'하면 경제적인 능력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제 생각엔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분수'인 것 같습니다. 서울은 늘 흥분상태인 사람과 같아 제가 감당하기에 힘이 듭니다. 저는 '바른 서원'을 세웠을진 모르나 일찌기 공덕을 쌓지는 못했습니다. 일찌기 했어야 할 일을 뒤늦게 하자니 힘이 드는 것이겠지요.

 

시월 첫날 좋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TV 토론 배심원단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후보가 54.4퍼센트를 득표해, 44퍼센트에 그친 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10퍼센트 포인트 앞섰다고 합니다. 원순씨와 민주당은 앞으로 일반 시민 대상 여론조사(30%), 선거인단 투표(40%)의 결과에 따라 후보 단일화를 이룰 거라고 합니다. 

 

원순씨가 비싼 월세 아파트에서 산다고 공격당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그는 비싼 집을 소유하고 편히 살 수 있었던 변호사입니다. 그런 그가 한때 소유했던 아파트까지 팔아 시민운동을 이끌어 왔는데 비싼 월세를 내는 아파트에서 산다고 비난을 받습니다. 부자들의 놀이터인 정치판에 오랜만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질투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강용석이라는 국회의원입니다. 한때는 원순씨가 시작한 참여연대에 몸 담았으나 그후 아주 다른 길로 간 변호사입니다.

 

동료 의원, 아나운서, 여학생... 여성들에 대한 온갖 성희롱 발언으로 한나라당에서 제명된 사람이 아직 국회의원을 하는 것만 해도 나라의 수치인데, 이 사람이 요즘 원순씨를 공격함으로써 매스컴을 타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하버드대 대학원을 다녔다니 타고난 어리석음은 고급 교육으로도 씻을 수 없는가 봅니다. 아마도 그는 월세 아파트에서 살지 않을 겁니다.

 

시월...'침묵'이 '말'을 덮어 세상이, 서울이 조금 조용해지고, '더 없는 행복'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