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원주여성민우회 (2011년 9월 16일)

divicom 2011. 9. 16. 06:51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좀체 움직이지 않는 돌처럼 사는 제가 어제는 새벽 6시 10분에 집을 나섰습니다. 강원도 원주의 여성민우회 초청으로 특강을 하러 간 것입니다. 원주여성민우회가 9월 15일부터 10월 6일까지  "끝이 아닌 시작, 완경/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제목의 특강을 진행하는데,

그 첫 모임의 강사가 된 것입니다. 4월에 출간한 책 <우먼에서 휴먼으로> 덕택입니다.

 

원주는 음전한 사람 같았습니다. <우먼에서 휴먼으로>의 '휴먼' 같은 도시였습니다. 사람은 적고 건물은 낮고 서울을 채우고 있는 욕망과 욕심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섭씨 30도의 날씨도 썩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세 시간 동안 원주 각지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제 인생의 숙제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새로 만난 친구들을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 그분들을 실망시키면 안 되니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헤어진 후 고질적 쳬력 감소로 치악산도, 박경리 선생 사시던 곳도 가보지 못하고, 민우회와 같은 건물에 있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기념관만 돌아보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원주를 보고 온 후라 그런지 서울 사람들이 문득 측은했습니다.

 

그렇게 왔는데도 집에 도착하니 6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단 12시간의 여행, 그러나 거기서 만난 맑은 얼굴들과 빛나는 눈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저를 그곳에 가게 한 오랜 친구, 칼럼니스트 박어진-- <나이먹는 즐거움>의 저자-- 그리고 원주여성민우회 여러분께 깊이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어제 원주민우회에서 받아온 자료집을 펼치니 제가 좋아하는 문정희 시인의 시 한 편이 실려 있습니다. '중년여자의 노래'입니다.

 

 

중년여자의 노래

 

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이상한 계절이 왔다.

 

아찔한 뾰족구두도 낮기만 해서

코까지 치켜들고 돌아다녔는데

 

낮고 편한 신발 하나

되는 대로 끄집어도

세상이 반쯤은 보이는 계절이 왔다.

 

예쁜 옷 화려한 장식 다 귀찮고

숨막히게 가슴 조이던 그리움도 오기도

모두 벗어버려

노브라된 가슴

동해바다로 출렁이던가 말던가

쳐다보는 이 없어 좋은 계절이 왔다.

 

입만 열면 자식 얘기 신경통 얘기가

열매보다 더 크게 낙엽보다 더 붉게

무성해가는

살찌고 기막힌 계절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