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날씨가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건 벌써 여러 해 전입니다. 봄과 가을이 턱없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은 예전보다 훨씬 매섭게 덥거나 추워지면서부터이니까요. 초등생 시절 '온대 지방'이라고 배웠던 우리나라가 '아열대 지방'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를 한 지도 한참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국민이 느끼는 것을 정부와 위정자들은 느끼지 못하니 말입니다. 하루하루 당장 눈 앞의 일을 처리하느라 느껴야 할 것도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혹시 '눈 앞의 일'이라는 게 '눈 앞의 이익'은 아닐까요? 변화가 시작된 후에조차 변화에 대응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고 전 시대의 개발 방식을 답습 추구한 덕에 서울은 거대한 물통이 되었습니다. 작금의 상황을 보노라니 '정원사의 수수께끼'가 떠오릅니다.
김수종 선배의 저서 <0.6'>에서 '정원사의 수수께끼'에 관련된 몇 문단을 옮겨둡니다. 아시다시피 '0.6도'는 20세기 100년 동안 지구의 온도가 0.6도 오른 것을 뜻합니다.
"지구 환경 문제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위기 인식과 관련하여 '정원사의 수수께끼'를 곧잘 인용한다.
정원사가 어느 날 아침 정원의 연못을 바라보니, 수면 위에 수련 잎 하나가 떠 있었다. 다음날 수련 잎은 두 개로, 그 다음날에는 네 개로, 이렇게 매일 전날보다 두 배로 계속 불어난다. 이렇게 해서 100일째 되는 날 연못은 수련 잎으로 꼭 찬다. 수련 잎이 연못의 반을 채우는 것은 며칠째일까? 답은 '99일째'이다.
또 어느 날 수련 잎이 증가하는 것을 알게 된 정원사가 이에 대비하여 연못을 두 배로 넓히는 공사를 한다. 이렇게 넗힌 연못이 수련 잎으로 다 차는 것은 며칠째일까? 답은 '101일째'이다.
정원사의 수수께끼는 인구 증가나 지구 온난화와 같은 지구 환경 문제의 위기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던지고 있다.
정원사는 며칠째에 위기를 느끼게 될까? 각양각색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틀이나 사흘 만에 수련 잎의 증가 속도를 보고 위기를 알고 대처할지 모른다. 또 99일째 되는 날에야 큰일났다고 난리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나 위기를 인식할 정도가 되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암 환자가 몸 속의 이상을 느꼈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게 되어 있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더욱 중요한 교훈은 연못을 넓히는 일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원사가 연못을 두 배로 늘리려면 우선 땅이 있어야 하고 적잖은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정작 하루의 시간을 버는 것뿐이다. 게다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못을 늘리는 것처럼 공간을 늘릴 수 없다... 지구는 하나뿐이다.
환경 문제를 문제로 취급하지 않거나 소홀히 생각하는 밑바탕에는 시간 및 공간적으로 인식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는 현재와 가까운 시간에, 그리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민감하다. 오늘, 내일 또는 일주일이나 한 달 후의 일은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1년이 넘는 장기 게획이 나오면 이해관계가 첨예한 소수 사람을 제외하고 관심이 시들해진다.
환경 문제는 10년, 50년 또는 100년 후의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문제일 수 있다. 정치인들은 실직하여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의 문제에 관심을 쏟는 것이 훨씬 긴급하다고 본다. 별 생산성 없이 비용만 들어가는 환경 보전보다는 그해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실업자를 줄이는 것이 유권자의 환심을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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