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머리가 좋다는 것 (2007년 7월 5일)

divicom 2009. 11. 17. 00:11

조지아 브라운은 영국 햄프셔에 사는 두 살 배기입니다. 최근 세계 천재들의 모임인 멘사 (Mensa)의 최연소 회원이 되었습니다. 데일리 메일 인터넷판에 실린 사진의 시선은 조지아가 범상한 아기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머리가 좋다는 건 빨리 배운다는 뜻이라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조지아는 생후 5개월에 기었고 9개월엔 걸었으며 14개월엔 혼자서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아이큐 152인 조지아는 아주 일찍 말문을 열었고 18개월쯤부터는 어른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돌에도 걸을 둥 말 둥 했던 저는 느린 아이였습니다. 유아기엔 종일 젖을 먹지 못해도 우는 법이 없었고 조금 자라서도 바쁘게 움직이는 것보다는 가만히 있는 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다 자란 지금도 여러 번 가본 길에서 헤매는가 하면 남들과 함께 한 일을 저 혼자만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조지아처럼 제게도 4명의 형제가 있습니다. 아이큐 140인 남동생은 아이디어도 많고 기억력도 뛰어납니다. 책을 읽으면 감동하고 좋아하는 게 고작인 저와 달리 동생은 몇 장에서 읽은 무슨 말, 연대와 에피소드까지 기억합니다. 동생의 좋은 머리를 부러워하며 사춘기와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화 중에 동생이 말했습니다. “누나, 금강경 읽었구나, 그거 금강경에 있는 말이지?” 저는 금강경이라는 경전이 있다는 건 알아도 읽은 적은 없었습니다. “아니, 아직 못 읽어봤는데…” 책을 아주 많이 읽던 동생 앞에 기가 죽어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다시 대화가 이어졌고 동생이 다시 제 가 한 말이 어떤 책에 있다고, 그 책을 읽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 책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동생이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어? 그 책을 안 읽었는데 어떻게 그걸 알지?” 저는 독서의 부족이 부끄러워 얼버무렸습니다. “글쎄, 그냥 나이 들다 보면 여기저기서 주워 듣게 되는 건가…”

어린 사람들은 대개 한번쯤 자신이 천재가 아닐까 의문을 가져 봅니다. 내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꿈을 품어보는 부모들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마흔 번째 생일을 싫어하는 건 이제 자신의 죽음에 요절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절망감의 표현일지 모릅니다.

천재가 요절하는 건 빨리 배우는 것과 관계가 있을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 조글조글 시들어가며 알게 되는 걸 아직 푸른 나이에 간파하고 더 배울 것 없는 이곳을 떠나가는 것이지요.

안타까운 건 늙어서도 천재를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17세에 “최대한 방탕하겠다”고 선언하고 19세에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기록한 후 37세에 이 세상을 뒤로 한 랭보, 그를 흉내 내는 메밀꽃 머리의 소유자들은 가엾습니다.

세상에 좋기만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가슴까지 따뜻하긴 어렵습니다. 숫자에 밝은 사람이 직관에 약한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겨우 세 살 때 작곡가로서의 천재성을 발휘하고 35세에 사망한 모차르트는 적잖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돈을 관리할 줄 몰라 빌어 쓰며 어렵게 살았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천상의 신을 살리는 게 지상의 인간들이듯 천재를 살아가게 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인정과 박수라는 겁니다. 이왕 마흔을 넘겨 살았으면 조지아와 같은 천재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면서 평범한 사람에게 주어진 수명을 즐겁게 살아내면 어떨까요? 몸이 시드는 동안 삶의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주워듣는 가르침과 그로 인한 깨달음으로 가능한 나를 키우리라 마음 먹고 말입니다.

범부凡夫의 즐거움 중 제일은 익명의 자유입니다. 조지아와 같은 천재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받습니다. 모차르트는 1791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천재성을 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은 2005년에도 유전자 감식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사람들은 죽어서도 살아있을 때처럼 자유로울 것입니다.

또 하나 좋은 점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 쉽다는 겁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대개 성격이 급합니다. 머리 좋은 아버지는 성적 나쁜 아들이 자신을 우습게 본다고 생각하고, 머리 좋은 상사는 지시를 잘 이행해내지 못하는 직원이 일을 피한다고 생각합니다. 머리 회전이 자신들보다 느려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머리가 좋지 않기 때문에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장맛비 퍼붓는 밤, 어둔 숲 키 큰 나무들 아래 붉은 땅을 꼭 보듬고 있는 고만고만한 나무들과 풀들을 생각합니다. 오늘 밤엔 모든 평범한 존재들에게 한 잔 바쳐야겠습니다. 자, 꼭 나만큼 키 작은 동료들에게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