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세상을 사는 방법 (2011년 2월 4일)

divicom 2011. 2. 4. 13:06

"세상을 힘들게 살고 쉽게 사는 차이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쉽게 사는 사람들은 가치의 차이를 쉽게 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내' 가족과 옛날의 가족 사이에 우선순위가 분명하다. 이런 의식구조에는 '나'와 '내 가족' 사이에도 우선순위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나'와 '남' 사이가 분명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 눈에 내가 얼마나 미련하고 미개해 보일까.

 

정신만 차리고 살면 제 몫 잘 챙길 능력이 있는 사람이 '가치관의 혼란' 속에 헤매고만 있으니. 나 스스로도 오랫동안 혼란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갈피가 잡히기 시작했다. 가족, 사회, 민족, 인류, 우주, 나를 포괄하는 여러 층위의 대아(大我)를 두루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 혼란스럽게 보일 수 있는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그 여러 층위를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하는 얕은꾀가 쉽게 사는 길을 마련해주지만, 근본적인 떳떳함을 해친다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김기협의 <아흔 개의 봄>에서 인용.

 

 

 

가끔 '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는 말을 듣습니다. 역사학자 김기협 씨가 어머니 이남덕 선생 시병 얘기를 쓴 <아흔 개의 봄>을 읽다가 김 선생의 답이 제 답과 같아 기뻤습니다. 결국 문제는 '떳떳함'이라는 생각이지요.

 

대학 시절 교정에서 이남덕 선생을 뵈었습니다. '인연'이 익지 않았었는지 선생의 강의는 듣지 못하고, 저만치 걸어가시는 모습을 뵈며 그분에게서 풍겨나오는 '떳떳함'의 향내만 맡았습니다. 물론 당시엔 그분의 남편이 <역사 앞에서>의 주인공 김성칠 선생인 줄도 몰랐습니다.

 

<아흔 개의 봄> 속 이 선생님은 치매 --놀랍도록 유쾌하게 지적인(知的인) -- 환자이시지만 제 기억 속 선생님에게선 언제나 고운 한복 밖으로 '떳떳함'이 흘러나옵니다. 추억이 힘이 센 이유가 여기에 있겠지요? 선생님, 부디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