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밤에 내린 풍성한 눈 (2011년 2월 2일)

divicom 2011. 2. 3. 08:45

"문 열자 그득한 눈! 환호하다 탄식한다.

 아! 어쩌면 저것으로 솜과 쌀이 되게 하여

 천하의 가난한 이들 등 따습고 배불리 한담?

 

 夜來白雪滿豊均 開戶歡呀仍歎貧

 야래백설만풍균 개호환하잉탄빈

 安得化爲綿與米 飽溫天下飢寒人

 안득화위면여미 포온천하기한인"

 

  --손병하(1881~1951)의 한시 '夜雪"

 

 

언니 같은 동생 수자에게서 선물 받은 한시집 <손끝에 남은 향기>를 읽다가

이 시와 만났습니다. 한시들을 선정, 요즘 말로 옮기고 이 책으로 엮은 이가

손종섭 선생이니 위 시를 쓰신 손병하 선생의 아드님입니다. 손종섭 선생의

해설 일부를 옮겨둡니다.

 

 

"밤사이 몰래 내려, 온누리에 가득 쌓여 있는 눈! 문을 열자 일시에 넘쳐나는

벅찬 풍만감에 '야...!' 한마디, 환호성을 지르다가는, 이내 가난을 탄식하는

깊은 한숨으로 바뀌고 만다. 솜도 같고 쌀도 같은 착각에서 놓여나는 순간,

현실의 가난이 상대적으로 더욱 한숨 겹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것으로

진짜 솜과 진짜 쌀이 되게 하여, 온 세상의 춥고 배고픈 사람들로 하여금,

따뜻하게 입게 하고, 배불리 먹게 할 수 있단 말이냐?...

 

한자 수수께끼에 '등 따습고 배부른 자는 무슨 자?'하면, '예도 예禮'하고

대답한다. '예'의 속자俗字는 '옷의 변'에 '풍년 풍'을 했으므로, 등에는

옷이요, 배에는 풍년이 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의식은 백성의

근본衣食民之本'이며,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알게 된다衣食足而知禮節'고

했다."

 

 

구제역으로 무고한 가축 3백만의 울음이 땅을 울리고 한여름 온도계처럼

치솟는 물가 탓에 어려운 살림이 더욱 어려워지는 설날 아침, 세상을 가득

채운 안개를 보며 손병하 선생이 꾸었던 꿈을 꿉니다. 저 안개가 따뜻한

옷이 되고 기름 도는 밥이 되어 '온 세상의 춥고 배고픈 사람들로 하여금,

따뜻하게 입게 하고, 배불리 먹게 할 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먼 길 오신 조상님들께 가족의 융성 대신 춥고 배고픈 사람들의 복을 조르는

설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