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무현의 슬픔 (2010년 11월 15일)

divicom 2010. 11. 15. 12:47

일요일 한낮 62세의 정 모라는 사람이 경상남도 김해시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인분을 뿌리다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노무현, 그대 무덤에 똥물을 부으며’라는 제목의 자필 유인물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엔 '친북 좌파세력들이 전교조·전공노 같은 빨갱이 세력들의 생성을 도와서 청소년들의 정신을 세뇌시키고, 국가 정체성을 혼돈에 빠뜨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오물이 투척된 너럭바위는 봉분을 대신한 것입니다. 전면에 ‘대통령 노무현’이라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바위 기단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김해서부경찰서는 오늘 정씨에 대해 재물손괴 및 사체 등의 모욕 혐의로 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한 달 전부터 오물 투척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물통을 구입하고 일주일 치 인분을 모으고 유인물도 수십 장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일요일 낮 1시 10분쯤 노 대통령 묘소에서 참배하는 척하다가 종이가방에서 플라스틱 통을 꺼내어 너럭바위에 인분을 뿌렸습니다.

 

이 사건을 접하니 지난 2월 2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에서 일어난 화재 생각이 납니다. 당시 경찰은 그 사건을 방화로 추정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재질의 용기 잔해 등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정밀감식을 의뢰했습니다. 경찰은 묘역 부근에서 김 전 대통령을 친공산주의자로 표현한 한 보수단체명의의 전단을 발견, 그 단체의 관련 여부도 수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건이 어떻게 되었나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3월 3일 연합뉴스에 <'DJ 묘역 방화' 한달…미궁 빠지나>라는 기사를 끝으로 후속기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미궁’에 빠져버린 것 같습니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전담수사팀을 꾸렸던 경찰이 여러 가지 단서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으니, 우리 경찰의 수사 실력이 한심한 걸까요, 아니면 수사를 마음껏 할 수 없거나 수사를 하고도 결과를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일까요?

 

어제 인분 소동으로 참배객들의 참배가 두 시간가량 중단되었으나, 너럭바위를 물로 깨끗이 씻은 다음 참배를 재개했다고 합니다. 한 달 전부터 이 ‘거사’를 준비하고 일주일 치나 냄새 지독한 인분을 모은 정씨의 노고에 비하면 너무나 간단한 귀결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묘역을 훼손한 범인은 잡지 못한 경찰도 100여 명의 참배객들이 보는 앞에서 현장범인 정씨를 잡지 않을 도리는 없었을 겁니다. 경찰과 법이 이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지 지켜볼 일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이 두 분은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국민을 사랑하고 존경했으나 국민은 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과 존경을 알고 보답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고 철부지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태생적 한계는 사람의 됨됨이에 상관없이 모두 한 표씩을 행사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큰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작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역사는 큰 사랑만을 기억합니다. 철부지 행동은 잠시 인구에 회자되다가 잊혀집니다. 검게 탔던 김대중 대통령 묘역에서 새 풀이 푸르게 돋고 노무현 대통령의 너럭바위 앞엔 다시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줄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