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제가 어린이였던 시절, 제겐 하고 싶은 일이나 갖고 싶은 게
없었습니다. 맏딸 노릇을 하느라 겉으로는 말 잘하고 명랑한 아이처럼
굴었지만, 제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혼자 이웃집 마루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거나 아버지의 책상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때의 제게 어린이날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어냐고 물었으면
저는 '없다'고 했을 거고, 어린이날에 일어나면 좋을 일을 한 가지
말하라고 하면 할머니와 엄마가 싸우지 않는 거라고 말했을 겁니다.
고부 갈등 심한 집에서 자란 사람은 어린 저의 소망을 금세 이해하시겠지요.
아이가 어린이날에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 보면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 아이의 나날에 결여된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저희 집엔 어린이가 없지만 어린이날이 오면 여러 가지 상념에 젖게
됩니다. 가장 마음 쓰이는 건 어른들만 있는 집의 유일한 어린이로서
제 아이가 겪었을 일들입니다. 부모는 부모 노릇을 하기엔 아는 게 너무
적었고, 아이는 권리 주장을 하기에 너무 어렸으니까요. 부모의 기대에
맞추느라 일찍 철들었을 아이는 과거의 부모와 현재의 부모를 두루
용서하며 효도하느라 바쁘지만 저는 늘 아이에게 미안합니다.
그런데 오늘 중앙일보 기사를 보니 저처럼, 혹은 저와 다른 방식으로
부모 노릇을 잘 못 하는 부모가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이 기사는
초등교사노동조합이 실시한 '2026년 어린이 인식 조사'를 인용하고
있는데, '어린이날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한
어린이의 44퍼센트가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기'라고 답했다고 하니까요.
어린이가 부모와 시간을 함께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니 한국 사회의 병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중앙일보 이보람 기자의 기사를 옮겨둡니다.
맨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날, 가장 받고 싶은 선물…1위, 폰·용돈 아니었다
초등학생들이 꼽은 어린이날 ‘가장 하고 싶은 일’, ‘가장 받고 싶은 선물’ 모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초등교사노동조합이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초등학생 13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어린이 인식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날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응답자 중 44.1%가 ‘여행, 외식 등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기’라고 답했다.
이어 ‘갖고 싶던 선물 받기’(27.7%), ‘친구들과 시간 보내기’(10.1%) 순으로 응답이 많았다.
어린이날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을 묻는 물음에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란 응답이
1위(28.2%)를 차지했다. 2·3위는 각각 ‘디지털기기’(휴대전화·태블릿·노트북, 25.3%),
‘용돈이나 상품권’(23.1%)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바라는 점’으로도 ‘함께 보내는
시간 늘리기’(39.7%)란 답변이 가장 많았다.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질문에 초등학생들은 ‘화목한 가정’(40%),
‘꿈을 이루는 것’(18.7%), ‘돈’(11.9%) 순으로 답했다. 가족과의 대화시간은
‘하루 30분~1시간 정도’라는 답변이 36.6%로 최다였다. 뒤이어 ‘1~2시간’(23.6%),
‘30분보다 적다’(18.5%)는 응답 순이었다.
마음이 힘들 때 이야기 상대로는 ‘어머니’(1029명, 중복응답)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아버지’(670명), ‘형제 또는 자매’(270명) 순이었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초등학생들이 꼽은 어린이날 가장 하고 싶은 일 1위는
‘가족과 여행가기’(33.6%)였다. 어린이날 받고 싶은 선물 1위는 ‘디지털기기’(19.1%),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17%), ‘반려동물’(16.9%), ‘현금 및 상품권’(11.8%) 순이었다.
강석조 초등교사노조 위원장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라며 “학교를 통해 단순히 보육 시간을 늘릴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을
만들어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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