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최윤희 선생님께 (2010년 10월 8일)

divicom 2010. 10. 8. 16:17

선생님,

얼마나 아프셨어요? 700가지 고통에 시달려 본 사람은 당신의 결정을 이해할 거라고 하셨죠?

저는 그보다 훨씬 적은 고통을 겪어보았지만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선생님,

기억나세요? 1990년대 초 선생님과 제가 같은 출판사에서 첫 책을 낸 인연으로 잠깐 만났었지요?

그때도 선생님은 몇 살 아래인 저보다 훨씬 반짝반짝 하셨지요.

 

선생님은 '떠나는 글'에 '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보니 밧데리가 방전된 거래요.'라고 쓰셨지만 선생님은 그냥 별이었습니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누구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태어나면서부터

반짝이는 별 말입니다. 

 

'행복전도사'인 선생님이 자살을 택했다고 이해를 못하겠다는 사람들, 이젠 '행복전도사'가 아니고

'불행전도사'라고 말하는 사람들, 고통 때문에 판단이 흐려졌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

 

선생님, 마침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선생님, 답답하시지요? '이해하기 쉬우라고 친절한 유서까지

남겼는데!' 큰 소리로 웃으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선생님, 그들도 언젠가 깨달을 때가 있을 거예요. 삶은 고통의 바다이나 행복해지는 건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 자신이 발견한 행복을 남에게 퍼뜨리는 것은 더욱 크나큰 능력이라는 것. 선생님이 이렇게 훌훌 떠나실 수 있는 건, 선생님 말씀대로 '행복하게,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

 

선생님,

'사랑'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사랑'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들이, 선생님과 선생님의 '최고의 남편'에게서 깨달음을 얻길 간절히 바랍니다. '완전 건강'하신 그 분이 선뜻 선생님의 동행이 되어 함께 떠나신 것을 보고, '사랑'은 곧 '함께, 혹은 대신 죽을 수 있음'이라는 걸 깨닫기 바랍니다.

 

선생님,

어느 별보다 반짝이는 별 하나와 별지기를 잃었으니 이 세상은 더욱 어둡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반짝임을 직접 혹은 글이나 목소리로 접했던 모든 사람들이 이 어둠을 지우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선생님, 최선을 다해 사신 선생님, 부디 편히 쉬소서.

 

최윤희 선생님(1947~2010)이 손수 쓰신

 

떠나는 글...

저희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여기저기 몸에서 경계경보가 울렸습니다. 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보니 밧데리가 방전된 거래요.

2년 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고 희망을 붙잡으려 노력했습니다.그런데 추석 전주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선고.숨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실렸고 또 한번의 절망적인 선고.그리고 또 다시 이번엔 심장에 이상이 생겼어요.

더 이상 입원에서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혼자 떠나려고 해남 땅끝마을
가서 수면제를 먹었는데 남편이 119 신고, 추적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 수는 없고...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텔에는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 또 용서를 구합니다. 너무 착한 남편,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그동안 저를 신뢰해주고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 또 죄송합니다. 그러나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2010.10.7

(봉투 겉면에 적은 글)

완전 건강한 남편은 저 때문에 동반여행을 떠납니다. 평생을 진실했고 준수했고 성실했던 최고의 남편.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