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약한 존재일까요, 강한 존재일까요?
지구의 기후를 바꾸는 존재이니, 인간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같으면 노랗고 붉은 단풍이 거리를 뒤덮을
때이지만, 올가을 가로수들은 푸르지도 붉지도
않은 어정쩡한 모습입니다. 저 나무들이 저렇게
된 건 바로 인간 때문입니다. 새삼 인간이 놀랍고,
자연이 인간에게 복수하는 방식이 무섭습니다.
아름다운 단풍의 부재처럼,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즉 지구적 전염병도 자연의 복수를 보여줍니다.
1918년에서 1920년까지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도
그중 하나이겠지요.
겨우 28세에 시월의 마지막 날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 (Egon Schiele:
1890-1918)는 지구를 괴롭힌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복수 당한 걸까요, 아니면 사랑을 버리고 실리를 택한
죄에 대한 벌을 받은 걸까요? 아래 글에 그 답이 있을까요?
잔인한 시월의 마지막 날 (이은화의 미술시간)
부스스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여성이 한 손을 뺨에 대고 있다.
생기와 초점을 잃은 두 눈은 곧 감길 것만 같다. 초상화 왼쪽 하단에는
‘1918년 10월 28일’이라는 날짜가 선명히 적혀 있다. 연필로 그려진
이 힘없는 여인은 과연 누굴까?
‘에디트 실레의 임종’(1918년·사진)은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가
그의 아내 에디트가 죽어가는 순간을 묘사한 그림이다. 실레는 16세 때
빈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지만, 에로틱한 누드화로
20세기 초 빈 미술계를 뒤흔든 문제적 화가이기도 했다. 실레가 에디트와
결혼한 건 1915년. 당시 그는 4년간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좀 더
조건이 나은 중산층 출신의 에디트를 선택했다. 결혼하자마자 실레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위해 입대했고, 에디트는 남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군대 근처로 이사 갈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1918년 전쟁이 끝나고 봄에 열린 전시가 대성공을 하면서 실레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이을 스타 작가로 급부상했다. 게다가 아내가 결혼
3년 만에 임신에 성공했다. 그의 인생 최고의 해였다.
신의 질투였을까. 바로 그해 가을, 스페인 독감 대유행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임신 6개월이던 에디트도 희생됐다. 실레는 아내의 병상을
무기력하게 지키며 본능처럼 종이와 연필을 꺼내 들었다. 간결한 선을
이용해 죽어가는 아내의 마지막 모습을 고통스럽게 기록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남편의 비통함이 느껴지는 슬픈 초상화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는 심정이 어땠을까? 어쩌면
화가는 그림 속에서라도 아내를 계속 살아있게 하고 싶어서 초상화를
남겼는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실레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 됐다.
아내를 잃고 3일 만에 그 역시 스페인 독감에 감염돼 2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잔인한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1030/130330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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