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또래였는데 스승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대강당 채플시간에 연사로 온
김민기 씨는 살아있는 신화였습니다.
'아침이슬'을 부르는 몸 보이지 않는 곳에
유신정권의 고문 흔적이 가득하다고
친구들은 눈물을 떨궜습니다.
고문 흉터 없는 제 몸이 부끄러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변했습니다.
유신 반대 데모를 하던 사람들은 4.19 혁명을
했던 사람들처럼 젊은 시절의 투쟁을
자랑하며 술잔을 기율였습니다.
전두환 독재정부와 싸우던 386세대는
뻔뻔한 정치가가 되거나 골프장 고객이
되었습니다.
변하지 않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김민기 씨였는데 그가 지난 21일,
이승을 떠났습니다. 가족에게 '고맙다,
나는 할 만큼 다했다'라고 하셨다지요.
맞습니다, 스승이여,
당신은 정말이지 할 만큼 다하셨습니다.
당신과 동시대인이어서 감사하고...
그만큼 부끄럽습니다.
부디 자유와 평안을 누리소서.
아래는 김수자 씨의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서
가져온 김민기 씨의 '봉우리'입니다.
봉우리
김민기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땐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 볼 수 있을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 것이 저며올 때는
그럴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1992년 하나옴니버스2 예전미디어
https://www.youtube.com/watch?v=K9RrY19QH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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