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출간한 졸저 <숲Forest>의 시 중에
'처음으로 (For the First Time)'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제목을 한글과 영어로 쓴 것은
이 시집의 시들이 그 두 개의 언어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의 마지막 연은 "늦게라도 보아야 하는 게 있다
/늦게라도 해봐야 하는 게 있다"입니다.
살아있어 좋은 점은 무엇보다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고, 어제는 바로 그래서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실험 음악 (Experimental Music) 콘서트에
갔습니다. 콘서트의 주인공은 멀리 노르웨이에서 온
두 명의 음악가, 신드러 저르가( SINDRE BJERGA)와
호어콘 리에( HÅKON LIE)였습니다. 콘서트 장소가 마침
집에서 가까운 홍은동의 복합문화공간 '서재 (Loud
Library)'여서 갈 수 있었습니다.
저르가 씨는 조그만 분홍 돼지를 비롯한 다양한 소품들을
이용해 다채로운 소리를 들려주었고, 리에 씨는 소품보다
음악 장비를 통한 소리로 익숙한 음악과 소음에 길들여진
제 두 귀를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제목이 있는지 없는지 악보가 있는지 없는지 아무런
지식이나 정보 없이 두 음악가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체험하고 나니 '소음 또한 음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늘 보던 풍경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네이버 사전에 실린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설명에 따르면,
실험 음악의 기원은 1913년에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가
쓴 미래주의 선언문 '소리의 예술(The Art of Noise)'이며,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The Art of Noise'의 'Noise'가 '소리'로 번역되어 있는데,
'소리'보다 '잡음'이나 '소음'으로 번역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은 거의 전 국민이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입니다.
음악의 세계 또한 케이팝(K-pop)과 트로트 음악이라는
거대한 풍조가 다양한 음악적 창작, 시도와 감상을 지우고
있는데, 조금 더 다채로운 소리,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들으면 생각과 상상 또한
보다 폭넓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테니까요.
'처음으로'라는 시에는 '늦게라도 보아야 하는 게 있다/늦게라도
해봐야 하는 게 있다'고 썼는데, 저르가 씨와 리에 씨의 실험 음악을
듣고 난 지금 거기에 한 줄 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늦게라도 들어야 하는 게 있다'.
https://www.facebook.com/people/%EC%84%9C%EC%9E%AC/100078209884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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