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한국일보와 장기영 사주(2024년 6월 9일)

divicom 2024. 6. 9. 16:15

나이 든 사람에게 숫자는 추억으로 가는 문을

여는 비밀번호입니다. 그 숫자가 '월, 일'과 합해져

특정한 날짜를 만들면 그날엔 꼼짝없이 추억의

포로가 됩니다.

 

오늘은 6월 9일, 보통 사람에겐 별 의미 없을

이날이 제겐 잊지 못할 날입니다. 장기영 사주가

한국일보를 창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일보사가 일곱 개의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며

한국 언론의 중추적 역할을 하던 1976년 말, 저는 

한국일보사가 실시한 33기 견습기자 시험을 치렀습니다.

 

두 차례의 필기시험과 한 번의 면접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견습기자 선발의 마지막 관문인 사주 면접을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중학동 옛 한국일보 건물 10층

사주실에서 장기영 사주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상업고교 출신으로 부총리를 역임한 입지전적

인물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어린이 신문,

경제 신문, 스포츠 신문, 영자 신문을 발행하고

견습기자 시험을 실시해 기자를 선발하신

놀라운 분이었습니다. 당신의 최종 학력이

고교 졸업이어서인지 한국일보 견습기자 시험엔

고졸 이상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웬만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아 지난

신문을 보며 그분의 용모와 인격을 짐작했는데,

막상 뵈니 넉넉한 풍모에 유머러스한 태도가 저절로

존경을 자아냈습니다.

 

그날 제게 주신 질문 중엔 "결혼 안 하고 기자 할

거요?"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결혼이란 걸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남자들에겐 하지 않을

질문을 하시는 데 대한 반발이 일어 곧바로 "아니오,

결혼도 하고 기자도 할 겁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사주님은 '어? 요놈 봐라?' 하는 듯 약간 놀란 눈으로

껄껄 웃으셨습니다.

 

사주 면접을 본 20명 중 13명이 33기 견습기자가

되었고 저는 제가 선택한 영자 신문 코리아타임스

(The Korea Times)에 배치되었습니다. 

 

1976년 말 저를 뽑아 주신 장기영 사주님은 이듬해

4월 돌아가시어, 저는 사주님이 면접을 보고 뽑으신 

마지막 견습기자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주님도 돌아가시고 뒤이어 한국일보사를 경영하시던 

장강재 회장님, 코리아타임스의 국장을 맡으셨던

정태연 선배님, 방태영 선배님 등 수많은 선후배와

동료들이 저세상으로 가셨고, 한국일보사 또한

사주님과 관계 없는 경영자에게 맡겨진 채 여러

언론사 중 하나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중학동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6월 9일이면 언제나 장기영 사주님과 층계참 벽에

써 있었던 그분의 말씀--'제목은 시다'--이 떠오릅니다.

기사의 제목이 '시詩'가 아니고 낚싯밥이 된 오늘,

이 나라에서 가장 자유롭던 언론기관 한국일보사

코리아타임스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