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서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2024년 한국에서는 '이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던 이웃의 손에 죽었다는 뉴스가
낯설지 않습니다.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서둘러 카페를
벗어날 때도 있습니다.
'이웃 복'이 필요한 곳이 또 하나 있음을
어머니 덕에 알았습니다. 바로 병실입니다.
몇 년 전 2인실에 입원한 환자를 돌보느라
병실에서 며칠 동안 지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있던 이웃 환자는 가끔 신음소리를
낼 뿐이었는데, 뒤이어 들어온 이웃은
특정종교와 관련된 말과 노래를 크게
틀어놓아 잠을 잘 수도 없고 쉴 수도
없었습니다. 직접 얘기했다가 싸움이 될까봐
간호사실에 얘기하자 간호사실에서 병실
규칙을 들어 중단시켰습니다.
어머니 병상 바로 옆 병상의 첫 번째 주인은
60대 초반의 여인이었는데, 말수가 적고
미소가 예뻤습니다. 그가 다른 병실로 옮겨간 후
80대 할머니가 그 자리에 오셨습니다. 할머니도
말씀이 많으셨지만 간병하는 딸은 붙임성이 좋은데다
목소리가 컸습니다. 딸은 온 종일 누군가와
얘기했고 저를 보기만 하면 '안녕하세요!'를 외쳐서
'안녕하세요!'를 하루에 다섯 번 들은 적도 있습니다.
할머니가 퇴원하시는 날은 병실 안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와 딸이 짐을 꾸리며
아침부터 오후 4시쯤 떠날 때까지 끝없이 큰소리로
얘기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모녀가 떠난 후 시트가 벗겨진 옆 침상의
고요를 즐기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설마 '구관이
명관'이라고 하게 되진 않겠지? 그 모녀보다 더
시끄러운 이웃이 오진 않겠지?
아, 왜 불안한 예상은 언제나 들어맞는 것일까요?
이번 할머니 환자는 어디가 편찮으신진 모르지만
기력이 좋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큰 목소리에
실린 단어들이 폭포 같습니다. 딸들이 '엄마,
그만 좀 해' 할 때도 있지만 폭포는 그치지 않습니다.
반면교사 이웃들 덕에 결심합니다.
1.말을 줄이자. 떠오르는 말과 느낌을 모두 말할
필요는 없다.
2.눈을 감거나 시선을 돌려 보기 싫은 것과 나쁜 것을
보지 않듯, 스스로 귀 닫기를 단련해 소음을 이기자.
3. 가능한 한 입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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