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황소, 얼룩소, 칡소, 젖소 (2023년 2월 27일)

divicom 2023. 2. 27. 11:39

경향신문을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

엄민용 기자의 '우리말 산책'처럼 고마운 글

때문에 아직 보고 있습니다.

우리말이 엉망이 되어간다고 안타까워하는 제가

우리말에 얼마나 무식한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엄 기자에게 감사하며 오늘 신문에 실린 그의 글을

옮겨둡니다.

 

 

우리말 산책

얼룩소는 ‘젖소’가 아니라 ‘칡소’다

 

‘황소’ 하면 누런 털빛의 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황소는 털빛과

상관없이 “큰 수소”를 뜻하는 말이다. ‘황소’는 15세기만 해도

‘한쇼’로 쓰였는데, 이때의 ‘한’은 “크다”는 의미다. 황소와

닮은꼴의 말이 ‘황새’다. 황새도 키가 큰 새이지, 누런 털빛의

새는 아니다. 황새의 옛 표기 역시 ‘한새’였다.

 

황소가 누런 털빛과 상관없음은 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오는

‘얼룩백이 황소’로도 알 수 있다. 얼룩백이(표준어는 얼룩빼기)는

털빛이 얼룩얼룩한 동물을 가리키며, 얼룩얼룩하다는 누런 빛이

아니라 ‘여러 가지 어두운 빛깔’의 점이나 줄 따위가 무늬를 이룬

모양을 뜻한다.

 

정지용 시인이 말한 얼룩빼기 황소는 누구나 아는 동요

‘얼룩송아지’의 아비 소다. 바로 우리의 고유종인 ‘칡소’를 가리킨다.

칡소는 “온몸에 칡덩굴 같은 어룽어 룽한 무늬가 있는 소”로,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흔했지만 요즘에는 기르는 농가가 아주 드물다.

 

이러한 ‘얼룩소’를 요즘 우리 축산농가에서 많이 기르는 젖소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젖소는 모두 외국 품종이며,

우리나라에 젖소가 들어온 것은 1960년대다. 따라서 1948년 국정

음악교과서 1학년용에 처음 실린 동요 ‘얼룩송아지’의 노랫말로

등장할 까닭이 없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젖소를 털빛으로 표현하면

얼룩소가 아니라 ‘점박이 소’다.

 

소는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한 가축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에는

소와 관련된 것이 많다. “사람이 융통성 없게 꽉 막힌 벽창호처럼

구느냐” 따위로 쓰는 ‘벽창호’도 그중 하나다. 본래 이 말은

벽창우(碧昌牛)로 쓰던 단어였다.

 

벽창우의 벽창은 평안북도의 벽동군과 창성군을 의미하는데,

이 두 지방의 소는 덩치가 크고 성질이 억세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벽창우이고, 이를 사람들이 벽창호로

잘못 쓰는 일이 많아져 지금은 표준어도 바뀌었다.

황소도 본래는 누런 털빛과 상관없지만, 이제는 그런 털빛의 소를

가리키는 말로도 쓸 수 있다. 세월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듯이

우리말도 늘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