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시, 그리고 '시시한 그림일기' (2023년 2월 3일)

divicom 2023. 2. 3. 10:42

이름 있는 병에 잡혀 3년 간 투병하느라 애쓴 제 아우

일러스트 포잇 (Illust-poet) 김수자 씨가 다시 현업에

복귀했습니다. (원래 남에게 제 아우를 얘기할 때는 '씨'라는

존칭을 붙이지 않는 게 옳지만 그도 이제 회갑이 지나 '씨'를

붙였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오랜만에 그의 블로그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

새 그림이 걸렸습니다. 투병하는 동안 '나의 아픔은

별것 아니라는 주문으로 엄살 부리지 않으려 애썼다.'는

그의 토로를 읽으니 머리가 다 빠지고 키가 줄어들 만큼

고통을 겪으면서도 의연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자랑스러운 아우, 존경스러운 사람, 김수자 씨의 건강과

활약을 축원하며 그의 새 작품을 아래에 옮겨둡니다.

이르사 데일리워드(Yrsa Daley-Ward)의 시 아래 글은

김수자 씨의 글입니다.

 

  
 

 

시                  이르사 데일리워드


오늘밤 저녁 식탁에서는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다들 너무 화가 났으므로.
유일한 소음은 본차이나에
부딪는 순은의 챙그랑 소리와
다른 집 아이들이 밖에서
노는 소리뿐이지만
이것이 네게 시를 주리라.

부엌에는 긴장을 끊어낼 만큼
잘 드는 칼이 없고
할머니의 손은
떨리고 있다.
고기와 얌 스틱에 목이
메도
소금 좀 주세요,
속삭일 용기도 감히 낼 수 없지만
이것이 네게 시를 주리라.

아빠는 입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오늘밤 아빠 자신도 확실히 잘 모르는
이유로
불꽃이 번쩍 튈 만큼 너를 때리기로
작정했다
너는 피멍이 든 채 떠날 것이다.
너는 피멍이 든 채 떠날 테지만
이것이 네게 시를 주리라.

피멍은 산산이 부서지리라.
피멍은 산산이 부서져서
검은 다이어먼드가 되리라.
아무도 반에서 네 옆자리에 앉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네 인생은 잘 풀릴지도 모른다.
분명 처음에는 그러지 못하겠지만
하지만 그것이
네게 시를 주리라.

 

 

오래 ~~오랜만에 블로그 문을 열었다.
3년여의 투병을 끝내고 새해를 맞는 마음가짐에도

특별한 용기가 필요했다. 다시 블로그를 시작할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묻고 답하다 아직까지 이 방을 찾아주는 방문객이 

있다는 사실에 힘을 내서 글을 남긴다.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나의 아픔은 별것 아니라는 주문으로 엄살 부리지 않으려 애썼다.
주위를 둘러보면 삶이 내내 힘든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건 아닌지, 일상을 별 탈없이 누리고 사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 아프면서 깨달았으니 어리석었다 싶다.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