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가 천민 자본주의의 대로를 질주하는 동안
소위 '우리 것'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그중 가장 엉망이 된 건 우리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방송국 아나운서들까지
엉터리 우리말을 합니다. 그런 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꼰대질'하는 사람이나 '속좁은' 사람으로 비난받습니다.
그러니 제가 우리말을 사랑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우리말에 대해 배우고 우리말로 쓴 글을
읽는 것입니다. 그러다 오랜만에 '성냥팔이 소녀'를
만났습니다. 담배 한 개비 물고 불붙이고 싶은 아침입니다.
우리말 산책
성냥팔이 소녀를 죽게 한 어른들의 무관심
엄민용 기자
요즘처럼 추운 날이면 생각나는 동화 하나가 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지은 ‘성냥팔이 소녀’다.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죽어간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동화는 작자가 빈곤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횡행한 어린이 노동 착취의 참혹함과 이웃의
불우함을 외면하는 이들의 냉정함을 비판하는 시선도 깔려 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어도 막을 수 있던 소녀(불우한 이웃)의 안타까운
죽음을 외면해 놓고는 나중에 기도 한 번 올리며 스스로 위안받으려는
어른(가진 자)의 이기심과 이중성을 비난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은 1845년이다. 약 180년 전이 시대 배경이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성냥팔이 소녀가 적지 않고,
소녀의 죽음을 외면하던 어른들은 더 많아진 듯싶어 이 겨울이
더욱 춥게 느껴진다.
최근 한 소년의 죽음을 두고 ‘왜 좀 더 굳건한 마음을 가지지 못했는지
안타깝다’고 한 모 정치인의 말은 마치 동화 속에서 소녀의 죽음을 스쳐
지나가며 ‘왜 좀 더 열심히 성냥을 팔지 않고 얼어죽었어’라고 중얼거렸을
행인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염치를 모르는 인간 부류는
‘어른들’인 듯하다.
그건 그렇고, ‘성냥팔이 소녀’와 관련한 글에서 흔히 틀리는 말이 하나 있다.
“소녀는 성냥 한 개피를 그었다” 따위 문장에 나오는 ‘개피’다.
“가늘게 쪼갠 나무토막이나 기름한 토막의 낱개”를 뜻하는 표준어는
‘개피’가 아니라 ‘개비’다.
또 “성냥개비를 넣는 상자”를 ‘성냥곽’으로 쓰는 일이 흔한데,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는 ‘곽’이 아니라 ‘갑(匣)’이다. ‘담배 한 갑’이나 ‘담뱃갑’ 등처럼
쓰인다. 이와 달리 ‘곽(槨)’은 “널을 넣기 위해 따로 짜 맞춘 매장 시설”,
즉 무덤에나 쓰이는 말이다. 따라서 ‘비눗곽’은 ‘비눗갑’이, ‘우유곽’은
‘우유갑’이 바른말이다. 작은 종이상자에 넣고 쓰는 휴지도 ‘곽티슈’가 아니라
‘갑 티슈’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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