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정의 (2010년 8월 27일)

divicom 2010. 8. 27. 08:33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샌델 (Michael J. Sandel) 교수가 쓴 <Justice>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서 아주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정의'라는 인류의 오래된 화두를 다루는데다 400쪽이 넘는 책이니, 이 책이 인기를 끄는 게 반가우면서도 궁금했는데, 어제밤 9시 뉴스를 보면서 의문이 풀렸습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총리와 장관 등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청문회에 대해 언급하며 "큰 하자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으니까요.

 

한때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고 막힌 가슴을 뚫어주던 청문회는, 이제 법을 무시하고 이용해야, 이웃을 외면하고 내 이익만을 뻔뻔하게 추구해야, 그래야 잘 살 수 있고 요직에도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불쾌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쉰도 되지 않은 나이에 놀라운 정치꾼의 모습을 보여주는 김태호 총리 후보자, 각종 비리를 쉬임 없이 저질러 '비리 백화점'이라는 영광스런 호칭을 얻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 등장한 후보자들 모두 둘째 가라면 서러운 부정 전문가들이지만, 노후대책을 위해 쪽방촌을 투기 대상으로 삼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임명을 철회하지 않고 한나라당 대표는 "큰 하자가 없다"고 하니, 높으신 분들과 낮은 사람들 사이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생각의 격차,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부정'인가에 대한 좁혀질 수 없는 견해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정부의 후반기, 이 나라가 어디로 향할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고 대통령이 고른 '인재'들이니 말입니다.

 

무력한 대중은 고작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견딜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위로를 찾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공직을 탐내는 자들의 부패는 다루지 않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미국인이 미국 사회의 '정의'에 대해 쓴 책입니다. 미국에서는, 또 마이클 샌델과 같은 학자로서는 우리가 청문회에서 본 비리의 경력자들이 총리나 장관 같은 공직에 임명된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을 테니, 공직자의 부패를 다루지 않은 것이겠지요. 그러니 이 책은 우리 사회나 정치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이론물리학의 세계만큼이나 동떨어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에 지친 마음엔 현실에서 동떨어진 얘기가 위안을 줍니다. 그래서 저도 이 책을 들추고 있나 봅니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