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조금도 부럽지 않아 (2021년 2월 18일)

divicom 2021. 2. 18. 18:51

엊그젠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강남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지하철엔 사람이 많았습니다.

늘 집 동네에 머무는 저는 한낮에 지하철 승객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습니다.

 

한참 만에 보는 객차 안 풍경은 예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장을 차려 입은 사람이나 후줄근한 차림의 사람이나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든 채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습니다.

 

일곱 명이 앉은 자리는 두꺼운 겨울 파카로 인해

여덟 명이나 아홉 명이 앉은 듯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다들 그렇게 끼어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만삭의 임신부나 아흔 노인이 앞에 와 선다 해도

자리를 내줄 순 없어 보였습니다. 앉은 사람들의 눈이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앞에 선 사람을 볼 수 없을 테니까요.

 

양재역 부근 프랜차이즈 카페의 손님들도

여느 카페에서 보았던 손님들처럼 시끄러웠습니다.

지하철에서나 카페에서나 마스크를 썼을 뿐

사람들의 행동은 달라진 게 없어보였습니다.

 

돌아오는 길, 지하철 역 부근 노점에서 귤 한 상자를

샀습니다. 집에 와서 옮겨 담으며 보니 상한 귤이

열네 개나 되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에선 어린 아이들을

죽인 어른들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가끔 산책길에서, 정물처럼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듯한 고양이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눈이

‘조금도 부럽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1809-1892)의

시 중에도 그런 제목의 시 -- I Envy Not in Any Moods —가 있지만,

내용은 오늘날 고양이들이 눈으로 하는 말과 전혀 다릅니다.

19세기는 오늘에 비해 훨씬 인간적이고 낭만적이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