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전엔 귀하던 눈이 이번 겨울엔 제법 자주 옵니다.
아침 나절 작은 눈송이들이 무리지어
동쪽에서 서쪽으로 내닫더니 천지가 금세 하얗습니다.
창가 난간에 쌓인 눈을 훑어 쥐어봅니다.
눈물을 품고 있는지 축축합니다.
축축한 만큼 잘 뭉쳐져 이내 돌이 됩니다.
좀 큰 덩어리로는 몸을 만들고 작은 덩어리로는 얼굴을 만듭니다.
사인펜으로 눈, 코, 입을 그려넣고 제라늄 마른 꽃잎을
머리 위에 얹습니다. 그렇게 보아서 일까요?
눈사람은 저를 닮았고, 빨간 꽃잎은 영락없이
제가 산책길에 쓰고 다니는 빨간 비니입니다.
눈사람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오늘 오후부터 주말까지 강추위라니
며칠은 견뎌낼까요?
문득 각오가 솟구칩니다.
꼭, 이만큼만, 이 꼬마 눈사람만큼만 하자.
그만큼 아름답자. 슬픔으로 오히려 단단해지자.
그만큼 견디자, 견딜 수 없게 되면 그처럼
깨끗하게 사라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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