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오늘 읽은 책: 소로우의 일기(2020년 3월 1일)

divicom 2020. 3. 1. 10:34

오늘은 3월의 첫날. 

다사다난했던 2월은 흙(土)으로 돌아갔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101주년 삼일절.

말 그대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날짜를 묶어 달을 만든 것,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게 만든 것, 

한 장씩 떼어내게 만든 것... 모두 참 잘한 일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2월, 어리석음이 판치던 2월을 과거로 만드는 데

달력을 넘기거나 떼어내는 것처럼 효과적인 일은 드물 겁니다.


길은 전보다 조용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정부는 신종 바이러스의 감염을 막기 위해 

오늘 '주일 예배'를 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지만

강행하겠다는 교회들이 적지 않습니다. 


책꽂이에서 우연히 뽑아든 <소로우의 일기>는 19세기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이며,

사상가이고 초월주의자로 불리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 Thoreau)의 일기입니다.

암울했던, 그러나 지금보다는 순수했던 1970년대 대학 시절 저는 소로우와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같은 초월주의자들의 글에서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소로우의 일기> 1852년 8월 8일 자에서 소로우는 "종교의 종파가 많은 것은

사람들의 생각에 순수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소위 다종교사회로 불리는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 책은 '도서출판 도솔'에서 나온 '개정판'인데 책의 맨 뒷장을 보니

2004년 1월 24일 김화자 선배로부터 선물받은 것입니다.

시 공부 모임에서 만났던 선배... 김 선배는 자신의 이름 옆에 

"보다 나은 삶을 기대하며"라고 써 주셨는데

이제 그 기대가 현실이 되었는지 어떤지, 무엇보다

이 감염의 시대를 안녕히 건너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 선배를 생각하며 책을 뒤적이다 1월 31일 자 일기에서

눈이 멎습니다. "동양 여자들은 얼굴을 열심히 가린다. 

서양 여자들은 다리를 가린다. 모두 여자들이 두뇌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당시 동양 여자들이 정말로 

얼굴을 열심히 가렸는지, 서양 여자들이 다리를 가렸는지는 차치하고,

왜 얼굴이나 다리를 가리는 게 '두뇌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원서를 찾아 확인해보고 싶지만

이 번역서에는 어떤 원서를 번역한 것인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저도 책을 여러 권 번역했지만 번역서에는 반드시 원서를 밝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번역서를 읽고 궁금증이 일 때 원문을

찾아 볼 수 있으니까요.


소로우가 정말로 이렇게 여성 비하적 발언을 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평생 독신으로 살다 45세에 죽은 소로우에게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완벽할 수는 없으니 소로우에게도 약점이 있었겠지요.

여성에 대한 그의 망언은 그의 약점 중 하나를 보여 줍니다.


소로우와 동시대를 살았다면 그와 싸웠을지 모르지만

저는 현재를 살고 있으니 그의 망언을 제쳐두고 제게 각성을 주거나

공감을 일으키는 발언에 주목합니다. 

5월 12일 자 일기의 첫 문장 같은 것이지요.

"천 년 전에 저녁 참새가 울었듯이

오늘 밤에도 저녁 참새는 변함없이 운다."


살아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살아 있는 한 배울 수 있으니까요.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뛰어남은 물론 그들의 어리석음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