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 일기 26: 마스크 아래 마스크(2020년 2월 4일)

divicom 2020. 2. 4. 07:40

오늘은 입춘.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제법입니다.

그러나 며칠 영하의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봄이 영 오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별로 춥지 않았던 이 겨울이 아예 물러갈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나라 안팎을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한국의 확진환자 중 두 번째 환자는 증상이 나아져 유전자증폭(PCR)검사에서도 

'음성'으로 확인돼 퇴원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겨울과 함께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이번 사건 덕분에 사람과 세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겁에 질려 어쩔줄 모르는 사람들과 정부들이 있는가 하면

평정을 유지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사람들과 정부도 있었습니다. 

우리 정부도 예전 정부들에 비해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저녁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중국 우한의 한국인 부총영사 이광호 씨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시종일관 담담하게 우한과 교민들의 상황을 들려주었습니다.

교민들 돌보고 중국 정부와 연락하기에도 바쁠 텐데 한국내 언론기관들까지

전화 인터뷰를 요구하니 얼마나 피곤할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언론기관들이 그의 입장을 헤아려 가급적 덜 괴롭히길,

그 또한 무사히 이 고비를 넘기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주길 바랍니다.


흰색, 검정색, 분홍색, 파란색 등 등 다양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다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옵니다. 일회용 마스크를 쓴 덕에 다 닮아 보이는 얼굴들,

그러나 그 아래엔 마스크보다 훨씬 다양한 평생용 마스크가 있습니다.


평생용 마스크, 즉 우리의 얼굴은 누가 결정할까요?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 만들어졌으니 부모라고 답하기 쉽지만

일란성 쌍둥이의 얼굴도 시간이 흐르며 달라집니다.


특히 나이든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을 드러낸다는데

대개 사람들에겐 하나 이상의 마음이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마다 아홉 개나 열 개의 마음을 갖고 있을지 모릅니다.

상황에 따라 그 마음들 중 어떤 한 마음이 다른 마음들을 누르고 발현되어

얼굴의 표정을 만들겠지요. 


그러면 그때 그때 그 한 마음을 정하는 건 누구일까요?

그건 바로 우리 자신이겠지요. 즉 여러 개의 마음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건 우리의 의지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B-C-D(Birth출생-Choice선택-Death사망)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제 마음 속에도 여러 개의 마음이 있을 겁니다.

세계는 날이 갈수록 빠르고 '스마트'해지지만 

저는 대개 가장 느리고 어리석은 마음을 선택하곤 합니다.

놀라는 일 없이 세상과 제 안을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마침내 마스크와 얼굴로부터 아주 자유로워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