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무 시간 가지 못한 인터넷 세상, 조금 전 들어가 보니 시끌시끌합니다.
입 가진 사람 모두 말하는 세상입니다. 논객, 의사, 작가 모두 떠들어댑니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입을 다물게 됩니다.
기형도 시인의 시 '가수는 입을 다무네'가 떠오릅니다.
믿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한때 저는 가수였습니다.
직업은 가수가 아니었지만 노래 부르는 자리에서는 늘 가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문기자 시절 한 해를 마감하는 편집국에서의 냉주파티에서
선배들의 채근을 받아 노래를 부르면 "넌 가수를 하지 왜 기자가 되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고, 1980년대 유행하던 칸막이 술집에서 선후배들과 회식하며
'그 겨울의 찻집'을 불렀다가 마담으로부터 비싼 과일안주를 선물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르는 사람이 저희 자리에 찾아와 제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젠 다 옛일입니다.
고열로 응급실에 실려갔던 지난 봄 어느 날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영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남은 시간은 '묵언(默言)'하며 살아야겠구나 마음먹었는데
열이 내린 후 목소리가 돌아오니 선물 받은 듯 기뻤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목소리는 예전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예전엔 아무리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목이 쉬는 일이 없었는데
이젠 조금만 말을 해도 목소리가 갈라집니다.
노래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유나 씨의 '너를 사랑하고도'와 패티김 씨의 '빛과 그림자' 등 고음 부분이 시원한 노래들을
즐겨부르곤 했는데, 이젠 고음이 나오지 않으니 노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조수미 씨의 아리아들을 틀어놓고 흉내 내던 일도 이젠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는 가장 좋은 친구였던 노래가 저를 떠나버린 겁니다.
이러니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좀 과장해 말하면 숨 쉬는 창문 하나를 잃었다고 할까요?
그러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평생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슬픔 혹은 답답함을.
부를 수 있다고 목청껏 불러대던 저 때문에 상처받은 친구들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제 안에 쌓인 것들을 쏟아내느라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 목소리가 변했듯 친구들의 목소리도 변하면 좋겠습니다.
노래 못하던 친구들이 노래를 잘하게 되어 가슴이 뻥 뚫리는 걸 경험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제 저는 노래를 잃은 제 목소리를 감사히 받아들입니다.
나이들수록 입으로 나가는 소리를 줄이라는 우주의 배려로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황혼녘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로 시작하는
'고향 생각'을 부르며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던 때부터 노래는 평생 제 친구였습니다.
그 오랜 친구가 떠나가는 건 이제 제가 그 없이도 살 수 있게, 혹은 살아야 하게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오랜 친구를 생각하니 오래 전 청년의 몸으로 영영 입을 다물어 버린 기형도 시인이 떠오릅니다.
'가수는 입을 다무네'는 네 연으로 이루어진 짧지 않은 시이지만 첫 연만 아래에 옮겨둡니다.
기형도 씨, 지금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가수는 입을 다무네
걸어가면서도 나는 기억할 수 있네
그때 나의 노래 죄다 비극이었으나
단순한 여자들은 나를 둘러쌌네
행복한 난투극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어리석었던 청춘을, 나는 욕하지 않으리
(하략)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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