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 일기10: 네 개의 시선, 그리고 질문(2019년 9월 14일)

divicom 2019. 9. 14. 08:21

새 친구는 대개 장점에 끌리지만 오래된 친구는 약점을 압니다.

오래 알면 알수록 많은 일을 함께 하거나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약점과 장점을 두루 알게 되는 것이지요.


제겐 사교 도피, 여행 기피 등 무수한 약점이 있는데, 새 친구는 잘 모르되 

오래된 친구들은 잘 아는 대표적 약점은 약한 체질과 체력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일은 꽤 열심히 하고 잘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몸은 고장나기 일쑤였습니다. 

팔다리가 약해서 깁스를 네 번인가 다섯 번인가 하는 바람에 

'도자기' '유리 항아리' 등으로 불리며 놀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약한 몸에서도 가장 약한 곳은 눈입니다. 시력이 약할 뿐만 아니라

쉽게 병이 나서 꽤 오랫동안 안과의 단골 노릇을 했습니다.

시력검사표 맨 위 주먹만한 글자조차 보지 못해 일찍부터 안경 신세를 졌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제 눈이 그렇게 나쁜 이유 몇 가지를 생각해내셨는데

첫째 어렸을 때 너무 먹지 않아서, 둘째 고무줄놀이를 할 때 태양을 쏘아보아서, 

셋째 책을 너무 많이 보아서였습니다.


저로선 세 가지 다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려서 먹지 않거나 먹지 못했다고 다 저처럼 

초고도근시가 되지는 않는 것 같고, 고무줄놀이를 할 때 태양을 쏘아보았다면 함께 놀던 친구들도 모두

저처럼 눈이 나빠야 하는데 그 아이들은 눈이 좋았고, 책을 저보다 훨씬 많이 본 사람들의 눈이 

저보다 더 좋은 경우를 자주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 자란 후 우리 오 형제 중 첫째인 오빠의 사주에 안경 네 개가 들어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차라리 그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그렇다면 제 초고도근시는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고 

제 잘못은 아니겠지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나빠지기 시작한 눈은 계속 악화일로를 걸었고 난시까지 겹쳐 안경을 써도 

눈 좋은 사람들만큼 보지 못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인가 콘택트렌즈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렌즈를 끼기 시작했는데 그걸 끼면 안경을 꼈을 때보다 잘 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렌즈를 처방해준 의사는 마흔 살쯤 되면 안구건조증으로 렌즈를 끼지 못하게 될 거라고 했지만 

저는 지금도 렌즈를 끼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약점이 장점 노릇을 하는 일이 흔합니다. 저는 초고도근시인 눈 덕분에 지금도 돋보기 없이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습니다. 가끔 지하철에서 손바닥만한 영어소설을 읽고 있으면 옆자리의 노인이 

'아니, 그 작은 글씨가 보여요?' 하고 놀라곤 합니다. 눈이 좋은 친구들은 늙어가며 돋보기를 사용하는데 

돋보기를 끼고 글을 읽다보면 머리가 아파 못 읽겠다고들 합니다. 저는 거의 평생 그래왔듯 렌즈나 안경을

끼고 예전처럼 책을 읽으니 늘 감사합니다.


친구들은 '나이들면 누구나 원시가 되니 네 눈도 나이들면 나아질 거야' 하고 위로해주곤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이들수록 시력이 나빠져 이젠 렌즈를 껴도 고작 0.4~0.5의 시력입니다.


눈이 이렇다보니 제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네 가지입니다. 아무 것도 끼지 않고 보는 어슴프레한 세상,

안경을 끼고 보는 세상, 렌즈를 끼고 보는 세상, 렌즈를 낀 상태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세상.

세상은 하나인데 눈의 상태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보는 제가 우습고, 이 점을 생각할 때마다

스스로를 경계하게 됩니다. 사람도 각기 하나의 세상과 같으니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고, 

눈으로 볼 때는 적어도 네 가지 눈으로 보되 반드시 눈을 감고도 봐야 한다고.  


여름 끝자락, 세상의 빛깔이 바뀌고 있습니다. 네 개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눈이 아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세상을 눈으로 볼 수 없는 만큼 마음으로 보는 능력이 발달했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진 사람들과 초고도근시인 사람들과 시력 좋은 사람들...

이들 중 누가 사물과 세상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볼 수 있을까요?

또 다시 질문으로 시작하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