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정두언 씨가 세상을 떠났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23일은 노회찬 씨의 1주기였습니다.
세상은 두 죽음으로 시끄러웠습니다.
노회찬 씨는 한국에, 아니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좋은 사람이었고
정두언 씨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정치 진영에서 찾아보기 힘든 맑음을
간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언젠가 저녁 때 저희 동네 주민 모임에 찾아왔기에
"이 시간에 뭐하러 이런 곳에 오세요?" 하고 짐짓 물었더니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안 다니면 왜 안 다니느냐고 야단치는 분들이 계셔요" 하며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김수자 씨의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서
그들에게 바치고 싶은 시와 꽃을 발견했습니다.
회찬씨, 두언씨, 푹 쉬고 오소서!
맨 아래 글은 김수자 씨의 글입니다.
하지만 이해해
신용목
삶은 아니지만 죽음은 이해해
말할 때
목소리를 이해해, 허공은 얼마나 큰 무덤인가?
귓속에 빨려들어
둥글게 부푸는 머리처럼
말한 후,
그 뜻은 남아 삶 속에 있네
발소리가 어둠을 두드린다, 발소리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발을 떠난 발자국과
허공을 떠난 고요 사이
어둠의 연기를 보는 머리가 동공처럼 열린다
한 남자의 퇴장과 암전,
그리고 텅 빈 무대에서
<아무 날의 도시. 문학과 지성>
긴 장마 끝에 무더위도 반갑지 않은데, 안팎으로 들려오는 나라 관련 소식들까지 암울하다. 고 노회찬의원의 1주기를 맞아 추모 기념 행사들이 열린단다. 얼마전엔 개혁보수로 일컬어지던 정두언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 같지 않은 정치인들의 죽음은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고 노무현대통령을 비롯해서 세 분의 죽음은 그나마 바른소리 할만한 사람이 부족한 사회의 큰 손실이다. 생전에 국민 누구나 악기 하나 연주할 수 있는 문화적인 나라를 꿈꾸었던 이상적인 현실주의자 노회찬의원을 기리며, 시멘트 바닥이나 아스팔트 틈에서도 꼿꼿이 자라 존재를 알리는 ‘자주 달개비’ 한 포기를 영전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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