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밤 패이스트리 (2010년 7월 16일)

divicom 2010. 7. 16. 09:40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파리000'라는 빵집이 저희 동네에도 있습니다.

어젯밤 산책길에 그 집에 들렀더니, 밤 패이스트리가 잔뜩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씁쓸했습니다.

 

한 삼 주 전까지만 해도 그 집의 밤 패이스트리를 구하긴 힘들었습니다. 

오전 열시 삼십 분쯤 밤 페이스트리가 구워져 나오면, 빵집에 들르는 사람마다

하나씩 사들고 갔습니다. 뜨거워서 봉지를 봉할 수도 업으니, 한쪽은 막히고

한쪽은 열린 봉지에 넣어 조심스럽게 들고 갔습니다.

 

그 집의 밤 패이스트리가 그렇게 인기 있었던 건 바로 밤 때문이었습니다.

밀가루 살 사이사이에 다글다글 숨어 있는 노란 밤 조각들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았고, 입에 넣으면 맛도 좋았습니다. 밤 패이스트리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고 칭찬하며, 앙금 적은 앙금빵을 파는 다른 집 흉을 보며 먹었습니다.

가끔은 밤을 이렇게 많이 넣는데 이 값을 받으면 이익이 남을까, 빵집 주인이 할

걱정을 대신 하기도 했습니다. 값을 오백 원쯤 올려 받아도 판매량이 줄지 않을 거라고

혼자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즐거운 마음으로 막 나온 밤 패이스트리를 사들고 왔는데

여느 때와 달랐습니다. 아무리 밀가루 살을 파고 들어도 다글다글 보석처럼 숨어있던

밤 조각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패이스트리 하나를 다 먹어치울 때까지 고작 몇 조각이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주인은 바뀌지 않았으니, 빵 굽는 기술자가 바뀌었나, 방침이

바뀌었나, 단순한 실수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을 모를 때는 상대에게

유리하게 생각하자 (benefit of the doubt)는 평소 방침에 따라, '실수'로 치부하고,

며칠 후에 한 번 더 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밤 패이스트리엔 밤이 드물었습니다.

그 집의 밤 패이스트리를 사던 단골들은 대개 저와 같은 실망을 느꼈을 겁니다.

그러니 전에는 사기 힘들던 밤 패이스트리가 이젠 쟁반 가득 남아 있는 것이겠지요.

 

패이스트리든 사람이든, 개인이든 단체든, 이름값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선가로 이름 높은 사람이 가족에겐 잔인한 경우가 있고, 공동체 운동을 하는 사람이

누구보다 이기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름값 못하기로는, 한나라당과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을

따라올 단체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며 한 나라가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고,

'어버이'연합의 활동은 지극히 어버이답지 못하니까요.

 

하긴 제가 지금 남 얘기할 때가 아닙니다. 여생을 다 바쳐도 '흥하되(興) 맑으라(淑)'는

제 이름값을 할 수 있을지, 지극히 의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