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보던 신문의 구독을 중단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신문은 기사가 너무 나빠서--육하원칙을 너무 무시한다든가-- 중단하고
어떤 신문은 배달 사고가 너무 잦아서 중단했습니다.
어떤 신문은 여성 칼럼니스트가 너무 적은데다, 그 몇 안 되는 여성 칼럼니스트들이
모두 소위 '부드러운' 주제, 여행이나 마음의 평화 같은 것만을 얘기하는 바람에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중단의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 신문을 찾다가 경향신문을 구독 중입니다.
오늘 아침 김민아 논설위원의 글 같은 글을 자주 보고 싶습니다.
칼럼의 말미에 있는 링크를 클릭하면 김 논설위원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김민아 칼럼]‘들어라, 문재인 정부여’
김민아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졌다. 한국갤럽이 지난 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잘하고 있다’(49%)와 ‘잘못하고 있다’(42%)의 격차는 한 자릿수(7%)로 좁혀졌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부동산 폭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집권 2년차에 70%를 웃도는 지지율이 이례적이었던 측면도 있다. 잠시, 한 걸음, 멈춰 서서 돌아볼 때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정치분석가인 토머스 프랭크는 2016년 미 대선을 앞두고 낸 저서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원제 Listen, Liberal·들어라, 진보주의자들이여)에서 빌 클린턴·버락 오바마 집권기 민주당이 최대 이슈인 불평등 문제를 뒷전으로 미뤘다고 지적했다. 동성결혼 합법화 같은 문화적 쟁점에는 거리낌이 없지만, 경제민주주의에만 직면하면 행동을 멈춘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변화를 기대했으나 “다시 포식자들이 설치기 시작했고 거의 모든 것이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고 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은 깨어나야 한다. 트럼프가 클린턴의 ‘집토끼’들을 훔쳐가고 있다”며 민주당의 패배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한국 현실과 닮은, 이 책의 문장들을 소개한다.
“불평등이란, 당신이 아등바등 살고 있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는 뜻이다.” ‘당신’은 한국에도 있다. 집값 폭등을 넋놓고 바라보는 대다수가 해당한다. ‘다른 누군가’는 사들이고 되팔고 사들이는 투기꾼, 임대료를 서너배씩 올려달라는 ‘갓(god)물주’다.
“그들(민주당 지도자들)은 불평등이 만연해 있고 끔찍한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필요한 일을 벌일 만큼 확신이나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한국의 집권세력으로 바꿔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기대를 저버리고 역사적 방향 전환을 공식 포기한 순간을 특정할 수 있다. 대통령이 (금융위기 주범인) 월스트리트 최고경영자들을 만났을 때다.” 비슷한 풍경을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인도 순방 중이던 지난 7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항소심에서 풀려나 상고심을 앞둔 터다.
“2009년의 상황은 대담함과 상상력을 요구했지만 모든 문제들이 임시방편으로 수습되었을 뿐이다.” 지난 7월 정부는 시가 17억원 아파트(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연 5만원’ 늘리겠다고 했다.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최고치인 171.6까지 치솟았다. 매수우위지수는 집을 팔려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많을 때 높아진다.
“민주당원과 엘리트와 금권정치가를 벤다이어그램으로 그리면 교차하는 공간은 (고급 휴양지) 마서스비니어드 섬이 될 것이다.” 한국판 마서스비니어드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강남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송파구)이 아파트를 보유한 ‘서울 강남’ 아닐까. 장 실장은 그럼에도 “모든 국민이 강남 가서 살아야 될 이유가 없다. 저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2년마다 공화당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유권자들을 자신들의 깃발 아래로 결집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주당도 내심 ‘유권자가 설마 자유한국당으로 가겠느냐’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가장 매력적인 문장은 이것이다. “경제는 생태계가 아니다. 경제 규칙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다. 경제는 정치적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 입맛에 맞추어 경제라는 밥상을 차릴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정치의 힘, 시민의 힘을 믿어야 한다. 지난해 문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제안했을 때 실현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구성되고 북한에서 김영남·김여정이 왔다. 만약 문 대통령이 국내 보수진영이나 미국 ‘전문가’들 눈치를 보며 ‘북측이 미사일 쏘면 남측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여는’ 관행만 답습했다면 남북 정상에 이어 북·미 정상까지 마주앉는 역사의 진전은 없었을 것이다. 왜 그런 담대함이 경제에선 발휘되지 않는가. 소득주도성장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세력 앞에 규제완화를 선물한다고 그들이 물러설 리 없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보유세의 획기적 강화라는 근본 대책을 내놔야 한다. 정부는 시민 모두에게 봉사해야 하지만, 우선순위는 있다. 먼저 누구를 위한 ‘굿 캅(좋은 경찰)’이 될지 선택해야 한다. 답은 자명하다. 부유층보다 중산층·서민, 다주택자·고가주택 보유자보다 1주택자·세입자, 서울보다 지역, 강남보다 비강남이다. 방향과 원칙을 갖고 뚜벅뚜벅 걸어가면 지지율은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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