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미국의 영웅, 영웅 만들기(2018년 9월 15일)

divicom 2018. 9. 15. 11:05

한국과 미국은 참 다릅니다. 

언어도 다르고 인구 구성도 다르고 국토의 크기도 다르고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정신도 다릅니다.


양국 간의 수많은 차이 중 하나는 '영웅'에 대한 태도입니다. 

한국인은 '영웅'을 만들기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영웅 노릇을 했을 때 한국인들의 박수 소리는 크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영웅으로 칭찬 받을 때

그 행위와 상관없는 '결함'이나 '실수'를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일본인들 만큼이나 영웅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장례식을 통해 미국의 영웅으로 인증 받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 같은 경우도 

한국 사람이었다면 다른 대우를 받았을지 모릅니다.


'안중근 의사' 같은 진짜 '영웅'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웅은 일시적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정치적 존재'입니다.

어제 경향신문에 실린 조찬제 에디터의 글을 읽어 보시지요.


[편집국에서]존 매케인은 영웅인가

조찬제 국제·기획 에디터

지난 1일 치러진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의 장례식은 미국 내에서의 그의 위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시신이 담긴 관은 의회의사당 중앙홀에 안치됐다. 미국 역사상 30명만이 누린 특권이자 명예였다.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은 국장을 방불케 했다. 빌 클린턴·조지 W 부시·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앨 고어·딕 체니 전 부통령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참모와 각료 등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말 그대로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적과 동지가 따로 없었다. 한 언론인은 ‘레지스탕스 모임’이라고 했다. 참석자들이야말로 미국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지도자라는 의미일 터이다.

각계 인사들이 쏟아낸 헌사들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애국자, 영웅, 자유의 수호자, 평화의 전사….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찬양일색이다. ‘평화의 전사’라는 헌사는 미국 흑인민권운동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존 루이스 하원의원이 바쳤다. 놀라운가. 그럴 필요는 없다. 매케인에게 쏟아지는 대부분의 헌사처럼 그의 본심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죽은 이에 대한 예의의 표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매케인 장례 기간 동안 그를 성인이나 영웅으로 만들려는 분위기는 역력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게 하는 걸까.

미국이 중시하는 전통이 있다. 군인에 대한 예우다. 달리 말하면 국가에 헌신한 자에 대한 존중이다.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다. 매케인만큼 이 전통에 맞는 미국인도 없을 성싶다. 그의 삶은 국가를 위한 봉사로 점철됐다. 젊은 시절에는 해군 소속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23번째 폭격 때 격추돼 포로로 5년5개월간 투옥돼 고초를 겪었다. 포로 시절 고문당하고 석방을 거부한 무용담은 그를 진정한 전쟁영웅으로 각인시켰다. 더욱이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미 해군 사상 최초로 4성장군을 지냈다. 3대에 걸쳐 국가에 충성한 가문이었던 것이다. 그는 하원의원 2선, 상원의원 6선 등 36년을 연방의원으로 봉사했다. 평판도 좋다.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는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자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자리매김됐다. 때로는 당론에 반기를 들어 공화당의 이단아로 불렸다. 그의 이단아 기질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사망하기 약 1년 전인 지난해 7월의 일이다. 그는 미 의회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을 연출했다. 뇌종양 수술을 받은 지 채 2주가 안된 그는 애리조나주에서 워싱턴까지 3000㎞를 날아 상원에 나타났다. 전국민의료보험제도인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일명 트럼프케어) 표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동료 의원들의 아낌없는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자신의 건강보다 소임을 다하려는 자세에 대한 찬사였다. 그는 반대표를 던졌다. 결국 법안은 부결됐고, 같은 당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배를 안겼다.

하지만 그는 영웅으로 불릴 수 없는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있다. 바로 인류 평화에 대한 기여다. 그의 삶은 전쟁과 분리할 수 없다. 그의 발언과 행동은 전쟁을 부추기는 데 일관돼왔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리비아·예멘 전쟁 어느 하나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란에 대한 공격이나 러시아와의 대결도 지지했다. 2008년 대선에서 매케인이 당선됐다면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평화주의자에게 그는 전쟁 도발자일 뿐이다. 그가 진정한 영웅이 되려면 포로 경험을 바탕으로 반전운동에 투신했어야 했다. 아니면 적어도 의회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아쉽게도 그의 행동은 방산업체의 이해관계와 일치했다. 록히드 마틴사가 그의 죽음에 헌사를 바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사이 중동에서는 수십만명이 죽고 수백만명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이런 그를 영웅으로 부를 수 있을까. 매케인은 영웅이 아니다. 그는 영웅 만들기를 좋아하는 미국 문화의 한 대상일 뿐이다. 그의 추모 열풍은 미국식 영웅 만들기의 한 단면이다. 매케인 사후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니콜라스 마두로의 베네수엘라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군사 쿠데타를 모의했다고 폭로했다. 이것이 매케인의 유산을 칭송하는 미국의 본 모습이다. 앞에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뒤로는 제국주의 방식으로 세계에 군림하려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는 특출한 정치인도 아니었다. 미국의 대외정책과 국가안보정책에 충실하고, 미국의 가치와 국익을 좇는 정치인에 불과했다. 자신과 가문의 명예,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대변자였을 뿐이다. 진정한 영웅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를 않는다. 과연 1년 뒤 얼마나 많은 미국인이 매케인을 기억할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140600025&code=990100#csidxe2e7460e6be5bdea8b1c8ac0f064c5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