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전환문명 시대의 한반도와 피터 와담스(2018년 9월 10일)

divicom 2018. 9. 10. 16:09

북극의 빙하가 녹는 것을 보며 마음 아파하면서도 

<북극이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Ice>를 쓴 피터 와담스(Peter Wadhams) 교수는 몰랐는데, 

오늘 아침 이문재 시인이 경향신문에 쓴 칼럼을 보고 알았습니다. 

변화는 때로 시인을 감상에 젖게 하지만 때로는 각성을 촉구합니다.  

이문재 시인에게 감사하며 그의 칼럼을 아래에 옮겨둡니다.


이문재의 시의 마음]‘주여, 때가 왔습니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아파트 주차장 한 귀퉁이에 누가 빨간 고추를 내다 널었다. 그 위로 잠자리 몇 마리가 날고 있다. 멀리 북한산 남서쪽 능선이 선명하다. 스카이라인이 칼로 도려낸 듯하다. 며칠 새 하늘이 한층 높아졌다. 구름 한 점 없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완연하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위대했습니다.’ 릴케의 시 ‘가을날’이 떠오르는 아침나절이다.

안팎으로 가을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가을인데, 청명한 가을날이 반갑지만은 않다. 폭염과 폭우가 물러간 것도 다행스럽지만은 않다. 여름은 위대하지 않았다. 지나간 여름이 아주 지나간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돌아보기가 어느새 새삼스럽지만 우리가 겪은 여름은 가혹했다. 한밤에도 30도가 넘는 초열대야가 이어졌고, 한 해 동안 내릴 비가 사나흘 만에 쏟아졌다. 해수면 온도가 30도를 넘어서기도 했다.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미세먼지까지 겹친 날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충남 마곡사 근처로 귀농한 선배가 ‘이건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 복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온 날은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일조차 버거웠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 북미 등지에서도 연일 이상 기후와 관련된 뉴스가 쏟아졌다. 급기야 북극이 사상 처음으로 ‘얼음 없는 여름’을 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소설 <더 로드>의 암울한 장면이 스쳤다. 잿빛 하늘 아래,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총, 라이터, 방수포, 비상식량을 챙겨 남쪽으로 향하는, 지구 최후, 아니 인류 최후의 날들.

여름은 혹독했다. 하지만 곧 잊혀질 것이다. 아니, 요 며칠 사이 다 잊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인지 모른다. 이번 여름 우리는 마스크를 챙기던 봄날을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봄날에 그 이전 겨울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는 뒤보다 앞을 선호한다. 과거나 현재보다 미래를 우선한다. 역사와 문명은 전방을 향해 직진한다고, 진화는 언제나 상승 곡선을 그린다고 믿으려 한다.

피터 와담스라는 해양물리학자가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스콧극지연구소’ 소속으로 1970년부터 북극을 연구해왔다. 북극해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처음 확인한 세계적 권위자 중 한 사람이다. 와담스 교수는 매년 북극을 찾아 해빙의 변화를 예의 주시했다. 잠수함을 타고 바다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 이래 북극 얼음은 두께가 40% 이상 얇아졌다. 북극해를 뒤덮고 있던 해빙의 면적도 크게 줄었다. 1970년대에 800만㎢이던 것이 2012년 340만㎢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와담스 교수를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그가 지난해 펴낸 그의 저서 <북극이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Ice)>에서 “수만년 만에 처음으로 북극이 얼음에 덮여 있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그의 예측이 이번 여름에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얼음 없는 북극’이 왜 문제인가? 해빙이 녹으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광을 다시 우주로 반사해온 해빙이 사라지면 태양에너지가 그대로 유입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해수면과 해저만 더워지는 것이 아니다. 영구 동토 표층도 함께 녹는데 이때 메탄이 대규모로 방출된다. 메탄의 분자당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보다 23배 더 커서 지구온난화가 급속도로 진행된다. 와담스 교수는 말한다. “북극 얼음의 감소는 단지 세계의 외딴곳에서 발생하는 흥미로운 변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 대한 위협이다. 우리가 파국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해내려면 지금 당장 긴급조치가 필요하다.”

피터 와담스 교수가 곧 방한한다. 경희대가 유엔 세계평화의 날을 기념해 해마다 개최하는 국제학술회의(PBF 2018, 9월18~20일)에 참석해 기조 강연을 한다.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WAAS), 세계시민사회단체연합(CoNGO)과 공동 주최하는 이번 학술회의의 대주제는 ‘전환문명 시대의 한반도: 그 가치와 철학’이다. 한반도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문명 전환의 한 계기로 승화시키자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미래 건설을 위해 현실정치와 경제논리를 뛰어넘는 지구적 차원의 ‘전환서사’를 모색하는 자리에 와담스 교수가 참석해 ‘지금 당장의 긴급조치’를 거론할 예정이다.

릴케가 지금 살아 있다면, 아마 자신의 시를 다시 썼을 것이다. ‘여름은 가혹했습니다. 주여, 진정 때가 온 것입니까?’ 릴케가 21세기의 언어로 되묻는 그 ‘때’는 과연 언제인가.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하는 그 순간인가. 아니면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능가하는 가까운 미래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특이점인가. 아직 시간은 있다. 미래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이 미래는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는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적 난제는 지역과 단위 국가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문명을 넘어 인간과 지구와의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할 때다. 릴케의 시처럼 ‘불안스레 가로수길을 이리저리 소요할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캐물어야 할 때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다 보면, 북극 해빙을 녹게 한 원인 중 하나를 우리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성찰과 발견들이 하나둘 모일 때 문명 전환을 위한 지구적 서사가 만들어질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092103005&code=990100#csidxd28460d2e562d32bdd7d43da55c7d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