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능 추위, 김주혁, 그리고 언론(2017년 11월 14일)

divicom 2017. 11. 14. 10:28

어제 내린 비 덕에 오늘 아침 나무들이 가벼워졌습니다. 

빗물이 씻어준 아스팔트 길은 검게 아름답고 

그 위에 물든 잎새들이 떨어져 골목이 그대로 작품입니다. 

한여름 무성한 잎으로 시야를 가리던 느티나무의 뼈대는 물든 잎만큼 우아합니다. 

아무래도 추위는 만물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장치인가 봅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입시한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신문 방송 모두 요란합니다. 

오늘 오후부터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예비소집일인 내일과 수능 당일인 16일 아침 최저기온이 평년보다 2~5도 낮고,

낮 최고기온도 1~5도 낮을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하 10도가 되나 20도가 되나 했더니 

겨우 영하 2도에서 영하 6도 사이, 예보가 틀린다 해도

영하 10도보다 높을 겁니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시시각각 정보를 제공하고 

정보 소비자들의 반응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중요한 정보와 쓸데없는 정보가 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이 늘 시끄럽고 사람들이 갈수록 어리석어집니다. 

나이 든 사람들조차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거나 모르니

어린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본래 사람은 그렇게 약한 존재가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지는데, 

거기엔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별 것 아닌 것을 침소봉대하여 큰일이 난 것처럼 하고, 

대단한 추위도 아닌데 대단한 추위인 것처럼 과장하여 두려움을 부추깁니다. 

이목을 끌어야 조회 수가 올라가고 그래야 광고가 들어오니 

좋은 기사보다 선정적 기사를 쓰는 것이지요.


어리석은 부모들은 언론의 장단에 놀아납니다. 

대학에 갈 나이면 다 자란 사람입니다. 

'수능날 기온이 한 5도 내려간다니 옷 잘 챙겨 입어' 라는 한마디면 충분하지만 

강보에 싸인 아기 다루듯 야단입니다. 

회사에 다니는 아들을 혼냈다고 상사에게 쫓아가 항의하는 어머니가 있다는 게 이해됩니다.


어떤 언론사에서는 수능 추위를 분석한 기사를 내놓았는데 

길이도 길 뿐만 아니라 형형색색의 도표가 몇 개나 들어 있습니다. 

기자라는 사람이 이런 데나 신경을 쓰고 있으니 정말 들여다봐야 할 사안은 잊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김주혁 씨의 사망은 그냥 그렇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지난달 30일 벤츠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숨진 김주혁 씨... 

왜 언론은 처음부터 사고를 김주혁 씨의 문제로 돌리려고 했을까요? 

심장 문제 때문에 사고를 일으킨 게 아니라는 게 알려지고 

블랙박스가 있다는 것도 알려졌으니 

이제는 진짜 사고의 원인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요? 


기자는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함으로써 먹고 사는 직업입니다. 

그들은 왜 김주혁 씨에 대한 시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는 걸까요? 

수능 추위를 분석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대신 김주혁 씨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몰던 벤츠 자동차가 급발진하여 그런 사고가 난 것이 아닌지 당연히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왜 그의 죽음을 단순한 연예가 소식쯤으로 돌리려 하는 걸까요? 


나무들이 잎을 떨구어 진면목을 드러내는 시간,

김주혁 씨 사망 사건의 진실도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수능과 추위는 앞으로도 되풀이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김주혁 씨,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의 면모를 밝혀내는 게

우리를 위로했던 훌륭한 배우에 대한 예의이고 사람에 대한 예의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