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낙엽을 밟으며 죽은 후배를 만나러 갔습니다.
코리아타임스 후배 노준헌... 그를 처음 보았던 1980년대 어느 날이 떠오릅니다.
헌칠민틋한 체구에 짙은 눈썹, 따스하고 유머러스한 눈빛, 울림 좋은 목소리...
미국에서 살다 왔다는 그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뭣 하러 왔을까?'였습니다.
이 살기 힘든 나라에 뭣 하러 왔을까...
그 만큼 잘 생기지 않고 그 만큼 따스하지 않은 저도 살기 힘든 나라인데...
어제 몸살 난 몸을 타이레놀로 달래며 은평장례식장을 찾아갈 때도 계속 그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어제 장례식장에서 만난 다른 후배에게서 그 이유를 들었습니다. 군대 가기 위해 왔다는 겁니다.
군인인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한국의 군인으로 복무하기 위해 왔다는 겁니다...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운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거나 사랑해도 아버지의 말을 안 듣는
아들이었으면 어땠을까... 그가 그곳에서 그냥 살았으면 어땠을까...
코리아타임스에서 카피에디터로 출발한 노준헌 씨는 이후 기자로 활동하다
마케팅본부장으로 광고를 끌어오느라 애썼다는데, 그때는 이미 제가 그 회사를 떠난 후라
그가 얼마나 애써서 광고를 끌어다 신문의 생존에 기여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어쩌다 한 번 스칠 때마다 야위어가는 모습이 눈에 밟혀 오래 떠나지 않았습니다.
소위 백세시대라는 21세기 초입 한국에서 쉰다섯에 영면에 든 노준헌 씨...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과음이라고 하는데, 숫기 없고 따스했던 그가
무례하고 냉혹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하는 수 없이 타야 했던 뗏목이
술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준헌씨, 한 공간에 있을 때 자주 만나 위로해주지 못해 참으로 미안합니다.
당신을 이른 죽음으로 이끈 모든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 부디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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