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2017 노벨문학상과 한국(2017년 10월 5일)

divicom 2017. 10. 5. 22:49

올 노벨문학상은 고은 선생께 돌아갔으면 했는데 또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상이 곧 실력을 뜻하는 건 아니지만 서운합니다.

선생이 일본에 태어나셨으면 벌써 그 상을 받으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이 나라가 일본처럼 일찍부터 번역에 힘을 기울이고, 뛰어난 사람의 흠을 잡으려 애쓰는 대신 

그를 인정하고 추앙했다면, 국민들이 명품보다 시를 좋아했다면,

선생은 이미 오래 전에 그 상의 수상자가 되셨을 겁니다.


한편으로는 고은 선생이 노벨상을 받지 못해 다행입니다. 

돈은 많아도 책은 읽지 않기로 유명한 이 나라의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은

골목 축구가 사라진 한국의 국가대표 축구팀이 월드컵 본선에 나가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일 테니까요.


뉴시스 통신의 보도를 보면 2015년 기준 이 나라에서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은 

전체의 34.7 퍼센트나 되었다고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를 인용한 그 기사에 따르면, 

성인 독서율은 2007년 76.7퍼센트에서 2015년 65.3퍼센트까지 떨어졌으며, 

2015년에 UN이 발표한 조사에서 그해 한국인의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로 최하위권에 속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1월 미국의 권위 있는 시사교양지 '뉴요커'는 문학에 관심은 없으면서 노벨문학상에만 매달리는 한국의 상황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문학평론가 마이틸리 G. 라오는 당시 뉴요커 온라인판에 쓴 칼럼 '한국은 정부의 큰 지원으로 노벨문학상을 가져갈 수 있을까?' 에서, 고은 시인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되는 유일한 한국 작가이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그의 시를 별로 읽지 않는다며,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할 때만 고은 시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한국 언론의 행태를 비판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통신사 뉴스1의 보도를 보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에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으나 1960년에 영국으로 이주해 켄트 대학과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런던에 거주하는 그는 

1982년에 발표한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A Pale View of Hills)>으로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받았는데, 그 작품은 전쟁과 원폭을 겪은 후의 일본을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1986년에 내놓은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An Artist of Floating World)>로 휘트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았고,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s)>로 1989년에 부커 상을 받았습니다. <남아 있는 나날>은 1993년에 안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이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저는 이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모든 상은 정치적인 것이니 상을 받고 안 받고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것입니다. 읽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읽는 것 말고 읽고 싶어서 읽어야 합니다. 자신은 일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으면서 자녀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고 자녀가 읽고 싶어 하지도 않는 책을 사주는 부모들, 책을 읽지 않고도 읽은 척 하기 좋게 만든 책을 써내는 작가들과 그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들, 책은 많이 읽었으나 읽은 것과 상관없이 행동하여 '책 읽으면 뭐해? 읽어봤자 저 지경인데?' 하는 냉소를 부추기는 책벌레들... 이들이 이 사회를 뒷걸음질 치게 합니다. 어제 뜬 추석달은 밝지만 마음은 어두운 밤입니다.